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부산=AP 뉴시스
이대로는 파국을 면치 못할 거란 불길한 기류가 드리웠다. 분투하던 중재국 파키스탄은 미국도 이란도 아닌 제3국과의 소통 채널을 가동했다. 중국이 휴전 성사를 위한 최후의 희망으로 부상한 순간이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8일 보도한 후일담에 따르면 중국은 중재국들의 요청에 이란과 직접 접촉했다. 1971년 수교한 양국은 밀접한 경제적·전략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며 경제 숨통을 틔워줬다. 또 2023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외교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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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전 ‘퇴로’ 절실했던 미국
미국 역시 중국의 막판 개입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휴전 발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이란을 휴전 협상에 나서게 관여했냐는 AFP통신 질의에 “그렇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다음 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협상의 일환으로)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의 최고위층 간에 대화가 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 대해 깊은 존중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트럼프 행정부는 강경 행보를 보이면서도 퇴로를 모색하고 있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이란에 “48시간 내 발전소 초토화”의 최후통첩을 날린 직후부터 뒤로는 휴전 성사를 위해 파키스탄과 긴밀히 협력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가디언 등이 8일 보도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은 고유가 후폭풍 속에 이란마저 끈질기게 버티는 이중고에 직면하자 휴전을 원했다”고 전했다.
11일(현지 시간) 이란과 종전 협상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향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오른쪽 두번째)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 누르칸 공군기지에 도착해 환영받고 있다. 라왈핀디=신화 뉴시스
미국 측이 강력한 휴전 의지를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가디언 취재에 응한 파키스탄 관계자들은 “미국이 중국의 개입을 편안하게 여겼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5월 미중 정상회담, 6~7월 북중미월드컵, 7월 건국 250주년, 11월 중간선거 등 굵직한 일정들이 줄줄이 예정된 상황에서 전쟁이 더 이상 길어졌다간 되돌리지 못할 정치적 타격을 줄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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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빚졌다”
휴전 약 일주일 전만 해도 중국은 관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1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시 주석이 ‘적이 실수할 때는 절대 방해하지 마라’는 나폴레옹의 격언을 따르고 있다”며 중국은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힘이 약해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뒤에서 미소 짓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랬던 중국이 결정적 순간에 개입을 선택하자 중국의 외교적 셈법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번 사건은 다음달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지렛대(레버리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외교적 자산을 가지게 되었다”며 “지정학적 호의를 베푼 시 주석은 다음달 정상회담에서 관세와 기술 수출 통제 완화뿐만 아니라 대만 독립에 대한 미국의 더욱 전향적인 입장을 얻어가길 희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패권 경쟁 중인 상대의 부탁을 들어준 중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세번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이 부산에서 회담하고 있다. 부산=AP 뉴시스
중국은 평화의 촉진자라는 이미지도 구축하고 있다. 중국과 이란의 접촉 직후 열린 파키스탄 내각회의에서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협상과 휴전을 위한 희망의 빛이 나타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구원 투수처럼 나선 중국을 ‘희망의 빛’으로 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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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피디아 시리즈가 《트럼피디아: 트럼프 알고리즘을 해부하다》라는 단행본으로 최근 출간됐습니다. 연재에 대한 의견이나 궁금한 점, 건의 사항을 asap@donga.com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