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수요 줄어도 여전히 비싼 흰 우유 세계 2위 수준… 미국보다 비싸 멸균 우유 수입량 5만 t 넘어서 주 소비층인 유소년 인구 줄며… 지난해 1인당 소비량 역대 최저 목장 규모 작고 수입 사료 부담… 고비용 구조 걷어낼 묘안 필요
국산 우유 가격을 둘러싼 소비자 불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 현지 물가보다 비싼 가격에 지친 소비자들은 값싼 수입 멸균 우유로 발길을 돌리는 추세다. 저출생에 따른 낙농·유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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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에는 X(옛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양국 우유 물가를 비교하는 글이 확산되기도 했다. 일본 현지 마트에서 1L들이 우유가 할인가 52엔(세금 포함 56엔·약 534원)에 판매 중인 사진이 공유되면서다. 게시글에는 “행사 가격이고 멸균 우유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싸다” “떨이 아니냐” “이 정도면 매일 (우유에 말아먹는) 시리얼 가능”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국내 우유 가격을 둘러싼 소비자들의 불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유값 논쟁의 이면에는 국내 원유(原乳) 가격 연동 구조를 비롯해 생산 규모의 한계에 따른 비용 구조, 유통 단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다. 하지만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은 최근 수입이 확대된 외국산 우유나 해외 현지 물가와 비교하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 세계 2위 수준 우유값… 국내 소비는 역대 최저
흰 우유 수요 감소의 다른 원인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격도 꼽힌다. 국제 물가 비교 사이트 ‘글로벌 프로덕트 프라이스’에 따르면 1월 기준 한국의 우유 가격(1.5∼2.5% 저지방·1L)은 3.42달러(약 5150원)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 78개국 가운데 가나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중국(2.04달러), 일본(1.83달러)과 비교하면 한국 우유 가격은 1.7∼1.9배가량 비싼 수준이다. 멸균 우유의 주요 산지인 유럽권과의 격차는 더 크다. ‘믈레코비타’ 등 멸균 우유 브랜드로 익숙한 폴란드(0.89달러)와 비교하면 국내 우유는 3.8배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 격차 탓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장기 보관이 가능한 수입 멸균 우유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2018년 4275t에 그쳤던 멸균 우유 수입량은 2019년 처음 1만 t을 넘어서며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수입량은 5만740t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7년 만에 10배 이상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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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우유의 가격 경쟁력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미국산 우유는 1월부터 기존 2.4%였던 관세가 0%로 낮아졌고, 유럽산 우유도 7월부터 2.2% 관세가 전면 철폐된다. 유업계 관계자는 “자유무역협정(FTA) 이전 유제품 관세는 평균 36%였는데 해마다 낮아져 국내산의 가격 경쟁력은 이미 외국산에 크게 밀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 ‘고비용 악순환’에 빠진 원유
이는 높은 생산비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 기준 우유 생산비 중 수입 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7.5%에 이를 정도로 국내 낙농가는 젖소 사료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이나 환율이 오르면 생산비도 크게 오르는 구조다. 낙농업계 관계자는 “2021∼2024년 우유 생산비는 L당 175원 올랐지만 원유 가격 인상 폭은 88원에 그쳤다”며 “이마저도 폭등한 사료값을 겨우 막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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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수요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가격 체계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국내 낙농가 보호를 위해 2013년부터 생산비 증감만으로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시장 수급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2023년부터는 원유를 마시는 음용유, 치즈 등을 만드는 가공유로 구분해 원유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용도별 차등 가격제’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제도 도입 이후에도 업계 간의 입장 차는 갈리고 있다. 낙농업계는 유업계가 음용유 물량을 줄이고 가공용은 외국산으로 대체해 농가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낙농진흥회 이사회 자료(추정치)에 따르면 2024년 음용류 공급량(190만 t)이 사용량(165만 t)을 웃돌아 25만 t이 남는 반면, 가공유는 27만 t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업계는 “국내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가격 경쟁력이 낮은 국산 원유로 우유를 만들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라 음용유 물량 확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 시내의 한 마트에 국산 흰 우유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국민 한 명당 평균 흰 우유 소비량은 2021년 26.6kg에서 지난해 22.9kg으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줄었다. 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
국산 우유의 고비용 구조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보전하는 모델도 있다. 대형마트들이 내놓은 자체 브랜드(PB) 우유가 대표적이다. 이마트의 신선우유인 ‘5K프라이스 세컵우유’는 100mL당 193원, 롯데마트 ‘오늘좋은 1등급우유’는 100mL당 222원 수준이다. ‘서울우유 나100%’(100mL당 297원)와 비교하면 25∼35%가량 낮은 가격이다.
이 같은 가격은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하고 자체 협약된 물류망을 통해 대리점 수수료 등을 걷어낸 결과다. 마트업계 관계자는 “중소 규모 가공 공장을 섭외해 한 번에 많은 물량을 맡겨 생산 단가를 낮추고, 공장에서 매장까지 이어지는 물류를 직접 관리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였다”며 “특히 사전 발주량에 맞춰 일률적으로 계획 생산을 진행해서 낮은 판매가에도 적자가 나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만 마트 PB 모델과 같은 유통 구조를 국산 우유 산업 전반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우유 산업은 원유를 생산하는 낙농가, 이를 우유로 제조하는 유업체, 유통을 담당하는 대리점, 판매 채널인 대형마트 등 각 단계가 분리된 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고비용 생산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자국 낙농 산업 보호를 위해 매년 가공 원료유 생산 지원에만 384억 엔(약 37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 같은 보조금을 통해 낙농가의 생산 기반을 유지하고 원유 공급 체계 전반의 원가 부담을 낮추는 식이다. 반면 한국의 관련 예산은 연간 400억 원 규모에 불과하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우유 소비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도 어렵다 보니 낙농가와 제조사 모두 경영난을 겪는 것이 현실”이라며 “단순 가격 통제보다는 지원금을 통해 생산비 자체를 낮춰 경직된 가격 연동 체제를 완화하고 자연스럽게 가격 하락을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