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나는 괴물의 뇌를 닮았다”… 뇌과학자를 구한 건 ‘따뜻한 양육’

입력 | 2026-03-14 01:40:00

[위클리 리포트] 계속되는 사이코패스 범죄
사이코패스, 핵심은 ‘냉담-무정서 성향’
냉담 성향 있다고 다 범죄자 아냐
청소년기 조기 개입이 비극 예방




“나는 사이코패스와 관련된 유전자와 뇌 패턴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다른 길로 가지 않은 건 행복한 어린 시절 덕분이라고 믿는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제임스 팰런의 말이다. 그는 2000년대 중반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어바인)에서 연쇄살인범들의 뇌 스캔 이미지를 분석하던 중, 충동 조절과 공감에 관여하는 부위의 활동이 떨어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형 뇌 패턴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뇌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이후 가족력과 유전자까지 살펴본 그는 본인이 저활성형 MAOA 변이 같은 위험 요인도 함께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팰런은 자신이 선천적으로 사이코패스 특질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어긋나지 않은 이유로 안정적이고 사랑받은 어린 시절을 꼽는다. 같은 취약성을 지녔다고 해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케빈 더턴은 선천적으로 냉담한 특질을 갖고 태어났어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이코패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더턴은 냉정함, 결단성 같은 성향을 사회에 공헌하는 데 사용하는 이들을 성공한 사이코패스로 부른다. 1991년 걸프전에 참전해 이라크군에게 생포돼 6주간 잔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군사 기밀을 끝까지 지켜낸 전직 영국 특수부대원 앤디 맥냅을 ‘좋은 사이코패스’의 사례로 제시했다.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언제나 범죄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학계는 ‘범죄자 사이코패스’와 ‘성공한 사이코패스’를 나누는 구간이 상당 부분 유년기와 청소년기라고 본다. 특히 이 시기 동안 공감력이 부족하고 죄책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냉담·무정서(CU) 성향’이 강화되면 이후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부모나 교사 등 주변의 개입을 통해 완화될 여지가 있다는 게 최근 연구 결과다.

2019년 숙명여대 연구팀이 학교폭력으로 상담센터를 찾은 중학생과 고등학생 414명을 분석한 결과 CU 성향이 강할수록 공격 행동도 심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성향은 곧바로 폭력으로 이어지기보다 부모가 아이의 친구 관계와 일상을 얼마나 알고 챙기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부모가 아이의 친구 관계와 일상을 꾸준히 살피고 관여할수록 아이의 반사회적 성향은 완화되고 공격행동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의 역할도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2017년 한 해외 연구진은 7∼9세 아동 304명을 대상으로 8주 동안 교사와 함께 학교 기반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한 뒤 CU 성향 수준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본인 정서 인식과 자기 통제 같은 교육만으로도 이 성향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개월에 걸친 추적조사 결과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아무 조치도 받지 않은 아이들보다 CU 성향이 더 낮았고, 품행장애 증상도 시간이 지나며 나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두 연구는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청소년기의 CU 성향이 가정의 지속적인 관심과 학교의 조기 개입이 함께할 때 완화될 여지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의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인 정신건강과 연결돼 있다”며 “가정에만 맡길 게 아니라 사회가 경제적·정서적 위기를 조기에 포착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조승연 기자 cho@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