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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에 물가 압박까지… 가격 내린 제당·제분·제빵업계 눈치보는 라면·제과업계

입력 | 2026-03-11 09:00:00

서울 시내 마트에 진열된 라면. 2026.2.3. 뉴스1


정부의 고강도 물가 고삐 죄기 속에 식품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널뛰는 데다 고환율까지 이어지면서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탓이다.

최근 제당·제분 업체들은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발맞춰 잇따라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CJ제일제당은 소비자용(B2C) 백설 하얀설탕, 갈색설탕 등 총 15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5% 내렸고, 밀가루도 백설 16개 전 제품을 대상으로 평균 5.5% 가격을 인하했다. 삼양사도 소비자용 설탕과 밀가루 가격을 평균 4~6% 인하했다.

주요 원재료인 설탕·밀가루 가격이 내려가자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제빵업계도 제품가 인하에 동참하며 물가 안정 기조가 확산되는 흐름을 보였다. 파리바게뜨는 빵류 중 6종의 가격을 100원에서 최대 1000원까지 인하하고, 케이크 5종의 가격도 내리기로 했다. 뚜레쥬르도 빵과 케이크 등 총 17종의 제품 가격을 평균 8.2% 인하하기로 했다.

● 라면·제과 정조준한 정부… 유가·환율 불확실성에 ‘안갯속’

정부의 시선은 라면·제과 등 가공 식품업계로 향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5일 농심·오뚜기·삼양식품·팔도 등 주요 라면 업체 임원진을 초청해 비공개 간담회를 개최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간담회에서 가격 인하를 요청하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고, 정부의 ‘민생물가 특별관리 TF’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동 전쟁으로 인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유가가 급등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9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4.3% 오른 배럴당 94.77달러를 기록했으며, 장중 한때 배럴당 119.48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뒤인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5월 인도분도 배럴당 98.96달러에 마감됐다.

중동상황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의 영향으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이 한때 30% 폭등하는 등 국제 유가가 요동친 9일 서울시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서부텍사스산중질유와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2026.3.9. 뉴스1

다만 주요 7개국(G7)이 유가 급등에 대응해 전략비축유를 공동 방출 가능성을 시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호르무즈 해협 장악 검토’ 등을 언급하면서 유가는 다소 진정세를 보였다. 10일 장중 WTI와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80달러대 후반, 90달러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각각 전거래일 대비 약 7% 하락한 수치다.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후임으로 차남 모즈타바를 선출했다. 모즈타바는 이란 혁명수비대 등 정권 내 강경파들의 지지를 받는 인물로, 이란의 저항 의지를 나타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완전 항복을 요구하며 공세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전쟁 종료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미국 타임지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엇갈리는 메시지는 중동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한 분쟁의 향방이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부각했다”며 “워싱턴에서는 이번 사태가 더 길고 치명적인 전쟁으로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될 경우 국제 유가가 이달 말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도 심각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진입할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포인트 상승하며, 150달러에 도달할 경우 물가 상승 폭은 2.9%포인트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 “전쟁 장기화 우려에 상황 관망”… 고심 깊어지는 업계

식품업계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유가 상승이 불가피해 식품 제조 공정 전반에 걸쳐 도미노식으로 원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우선 유가가 오르면 전기·가스요금이 동반 상승하며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고환율까지 겹치면 대부분의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식품업계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는 형편이다. 해운 운임이 상승하면 원재료 조달 비용을 끌어올리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포장재 비용 상승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페트병과 비닐 포장재 등의 주원료는 원유를 정제해 얻는 나프타다. 유가가 오르면 나프타 가격이 연동 상승하고, 이는 기초 유분인 에틸렌·프로필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반토르가 제공한 이 위성 이미지에서 3월2일 사우디아라비아 라스 타누라 정유공장이 이란의 드론 공격 후 발생한 피해를 보여주고 있다. 2026.03.10. AP/뉴시스

아직까지 유가 등락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은 가시화되지 않아 식품업계는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한 라면업계 관계자는 “유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공공요금과 물가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데 아직 그런 영향이 크지 않아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제과업계 관계자 역시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국제 정세가 불안하다 보니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만 유가가 안정되더라도 제품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유가 외에도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고 특정 원재료비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에 불과하다”며 “불안정한 대외 상황이 이어지는 만큼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물가 안정 취지는 공감하지만 원재료 한두 개 가격이 하락했다고 해서 가격을 조정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가격 인하 대신 할인 품목을 확대해 실질적인 가격 부담 완화 효과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혜린 기자 sinnala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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