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마트에 진열된 라면. 2026.2.3.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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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고강도 물가 고삐 죄기 속에 식품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널뛰는 데다 고환율까지 이어지면서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탓이다.
최근 제당·제분 업체들은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발맞춰 잇따라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CJ제일제당은 소비자용(B2C) 백설 하얀설탕, 갈색설탕 등 총 15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5% 내렸고, 밀가루도 백설 16개 전 제품을 대상으로 평균 5.5% 가격을 인하했다. 삼양사도 소비자용 설탕과 밀가루 가격을 평균 4~6% 인하했다.
주요 원재료인 설탕·밀가루 가격이 내려가자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제빵업계도 제품가 인하에 동참하며 물가 안정 기조가 확산되는 흐름을 보였다. 파리바게뜨는 빵류 중 6종의 가격을 100원에서 최대 1000원까지 인하하고, 케이크 5종의 가격도 내리기로 했다. 뚜레쥬르도 빵과 케이크 등 총 17종의 제품 가격을 평균 8.2% 인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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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시선은 라면·제과 등 가공 식품업계로 향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5일 농심·오뚜기·삼양식품·팔도 등 주요 라면 업체 임원진을 초청해 비공개 간담회를 개최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간담회에서 가격 인하를 요청하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고, 정부의 ‘민생물가 특별관리 TF’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동 전쟁으로 인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유가가 급등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9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4.3% 오른 배럴당 94.77달러를 기록했으며, 장중 한때 배럴당 119.48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뒤인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 5월 인도분도 배럴당 98.96달러에 마감됐다.
중동상황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의 영향으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이 한때 30% 폭등하는 등 국제 유가가 요동친 9일 서울시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서부텍사스산중질유와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2026.3.9. 뉴스1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후임으로 차남 모즈타바를 선출했다. 모즈타바는 이란 혁명수비대 등 정권 내 강경파들의 지지를 받는 인물로, 이란의 저항 의지를 나타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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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될 경우 국제 유가가 이달 말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도 심각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진입할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포인트 상승하며, 150달러에 도달할 경우 물가 상승 폭은 2.9%포인트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 “전쟁 장기화 우려에 상황 관망”… 고심 깊어지는 업계
식품업계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유가 상승이 불가피해 식품 제조 공정 전반에 걸쳐 도미노식으로 원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우선 유가가 오르면 전기·가스요금이 동반 상승하며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고환율까지 겹치면 대부분의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식품업계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는 형편이다. 해운 운임이 상승하면 원재료 조달 비용을 끌어올리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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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토르가 제공한 이 위성 이미지에서 3월2일 사우디아라비아 라스 타누라 정유공장이 이란의 드론 공격 후 발생한 피해를 보여주고 있다. 2026.03.10. AP/뉴시스
다만 유가가 안정되더라도 제품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유가 외에도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고 특정 원재료비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에 불과하다”며 “불안정한 대외 상황이 이어지는 만큼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물가 안정 취지는 공감하지만 원재료 한두 개 가격이 하락했다고 해서 가격을 조정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가격 인하 대신 할인 품목을 확대해 실질적인 가격 부담 완화 효과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혜린 기자 sinnala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