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시대를 담아낸 풍경화
빈센트 반 고흐 ‘노란 집’(1888년). 고흐가 살던 집 뒤편 철도 교량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 산업혁명 이후 철도는 화가들의 풍경 속에도 새로운 문명의 흔적으로 등장했다. 사진 출처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 동요를 들을 때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 집’이 떠오른다. 그림 속에는 모양이 쌍둥이처럼 닮은 2층짜리 집 두 채가 연결된 채 나란히 서 있다. 이 가운데 오른쪽이 고흐가 남부 프랑스 아를에서 세 들어 살던 집이다. 외벽은 낡았지만 남부 프로방스 지방 특유의 노란 황토색 톤으로 칠해져 있어 ‘노란 집’으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두 주택 모두 소실됐지만, 기록에 따르면 노란 집은 각 층이 약 56.19㎡(17평) 남짓한 아담한 벽돌집이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2층에는 침실 네 개가 있었다.》
고흐는 따뜻한 남부 프랑스에서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이 집을 얻었다. 1층 거실은 작업실로 쓰고, 2층의 초록색 창문이 닫힌 왼쪽 방을 자신의 거처로 삼았다. 창이 활짝 열린 오른쪽 방은 손님방으로 썼다. 훗날 폴 고갱이 아를에 내려와 지냈던 방이다. 고흐는 이 집에서 약 1년을 살았고 고갱은 두 달가량 머물렀다.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두 화가가 함께 지냈던 집이니, 미술사에 등장하는 화가의 집 가운데 가장 유명한 집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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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다시 보면 임대료가 싼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 배경에는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다리 위를 달리고 있다. 고흐의 집 바로 뒤가 기찻길이었던 셈이다. 정확히 말하면 집은 기차가 지나는 다리 아래쪽에 자리해 기차가 달릴 때마다 상당한 소음과 진동이 느껴졌을 것이다. 동요의 가사처럼 이 집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쉴 때마다 ‘칙칙폭폭’ 기차 소리가 가깝게 들렸을 테다.
기차의 기적 소리와 덜컹거리는 진동이 고흐에게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것은 아닐 것이다. 고흐는 기차가 가져다준 기계 문명의 혜택을 누구보다 먼저 누린 화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파리를 떠나 남부 프랑스 아를에서 작업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파리와 남부 항구 도시 마르세유를 잇는 철도가 1856년 개통된 덕분이었다.
1888년 2월 고흐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리옹과 아비뇽을 거쳐 아를에 도착했다. 750km에 이르는 먼 거리를 기차 덕분에 대략 16시간 만에 이동할 수 있었다. 마차로는 일주일 이상 걸렸을 장거리 여행을 단 하루 만에 하는 신세계를 맛본 셈이다.
그는 기차 덕분에 파리에 있는 동생 테오와 편지도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는 1840년대부터 철도 우편을 시작했는데 1854년부터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우편을 분류하는 이동 우체국 시스템까지 갖췄다. 덕분에 파리와 아를 사이에서도 하루이틀이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고흐는 이를 이용해 동생과 가족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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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살던 아를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작업하던 또 다른 인상파 화가 폴 세잔 역시 기차가 가져온 문명적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작품에 담았다.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 출신인 세잔은 기차 덕분에 파리와 고향을 수시로 오가며 활동했고, 생애 후반에는 고향에 완전히 정착했다. 그는 고향의 명산인 생트빅투아르산을 80점 넘게 그렸는데, 이 작품들에는 기차나 철도 교량이 자주 등장한다.
폴 세잔 ‘큰 소나무가 있는 생트빅투아르산’(1887년경). 전원 풍경 속 철도 교량 위로 기차가 지나가며 자연 속으로 스며든 산업혁명의 변화를 보여준다. 사진 출처 영국 코톨드 미술관
한가로운 전원 풍경처럼 보이지만 시선이 그림 오른쪽 아래의 긴 철도 교량에 닿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진다. 자세히 보면 기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다리를 지나가고 있다. 전원 풍경이 주는 적막함이 기차의 우렁찬 기적 소리에 깨지면서 화면에 갑자기 생기가 느껴진다.
윌리엄 터너 ‘비, 증기, 속도―대서부 열차’(1844년). 오른쪽 상단은 그림의 배경인 영국 템스강 메이든헤드 철도교의 현재 모습.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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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그림에 등장하는 증기기관차는 1840년부터 제작된 ‘파이어플라이(Firefly)’로, 최고 시속 95km까지 낼 수 있었다. 스티븐슨이 만든 기차가 1830년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철도에서 역사상 처음 상용화됐을 때 낸 속도는 시속 48km였다. 기차 노선이 등장한 지 20년도 채 되지 않아 오늘날 초고속 열차에 비견할 만한 경이로운 속도를 내는 기차가 등장한 것이었다.
그림 속 기차가 당시 기준으로 경이로운 속도를 내던 기차였다는 점을 떠올리며 다시 보면 화면이 더욱 장엄하게 느껴진다. 자세히 보면 비바람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내리치고 있고, 검고 육중한 증기기관차가 그 비바람을 뚫고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 나온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객차다. 초기 열차의 객차는 지금처럼 지붕이 완전히 덮여 있지 않은 개방형이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승객들이 비와 증기를 그대로 맞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승객들은 비와 증기 속에서 당시 기준으로 경이로운 속도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터너는 여기에 약간의 장난기 어린 장면을 추가했는데 화면 오른쪽 아래를 자세히 보면 기차의 굉음을 듣고 놀란 토끼가 달아나는 모습이 자그맣게 그려져 있다.
비바람을 그대로 맞는 승객과 놀라 달아나는 토끼까지 유쾌하게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 그림은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문명적 변화를 전통적 삶과 대비시켜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기차만 그린 것이 아니라 기계 문명으로 빠르게 바뀌어 가는 삶과 변화와 무관한 일상의 모습까지 함께 담아냈기 때문이다. 화면 왼쪽 아래를 보면 낡은 다리 옆으로 나룻배 한 척이 보인다. 기차로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삶 또한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빠르게 바뀌는 삶과 느리게 이어지는 삶을 하나의 화면 속에 대조해 보여 주는 방식은 19세기 회화에서 자주 발견된다. 터너의 ‘비, 증기, 속도―대서부 열차’뿐 아니라 고흐와 세잔의 풍경화에 등장하는 기차 역시 산업혁명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유럽 사회의 시대적 정서를 환기시켜 준다. 터너, 고흐, 세잔은 서로 차이가 있지만 새로운 기계 문명이 이끄는 변화를 한 걸음 떨어져 담담하게 바라본 듯하다. 그들의 그림에서는 기계 문명에 대한 기대와 함께 그것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함께 느껴진다.
이처럼 기계에 대한 양가적 감정은 19세기 산업혁명 시대를 지배한 중요한 정서였음을 당시의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미묘한 감정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시대를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의 정서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