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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캐다 ‘딸기 농부’된 김형일 “金도 딸기도 땀·눈물을 먹고 자랍니다”[이헌재의 인생홈런]

입력 | 2026-03-08 12:35:00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들이 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는 김형일 전 감독. 김형일 제공


딸기 농부로 변신한 김형일 전 감독. 이헌재 기자

처음에 원했던 건 작은 텃밭이었다. 막연하게 농사를 지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평생 땀과 함께 살아왔는데 이왕이면 자연으로 돌아가 땀을 흘리면서 살면 좋지 않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결심했다. 딸기 농사를 짓기로. “많은 과일들이 호불호가 있지만 딸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느냐”는 게 결론이었다. 김형일 전 국가대표 사이클 감독(48)은 그렇게 2024년 소속팀인 대구시청 감독을 그만두자마자 곧바로 ‘딸기 농부’가 됐다.

김형일은 평생 자전거 안장에서 살아온 자전거인이다. 자전거가 좋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서울체중·고와 한국체육대를 나와 2002년에는 부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다. 단거리인 스프린트 선수였던 그는 막판 삐끗하며 4위로 아쉽게 시상대에 서진 못했지만 수준급 선수였다. 

김형일 전 대구시청 사이클 감독이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김형일 제공


그는 이후 경륜 선수로 전향해 5년간 선수로 뛰었다.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건 아니지만 상금 랭킹 10위 안팎에 오르는 꽤 괜찮은 선수였다.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삶도 윤택했다. 하지만 가슴속에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많은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공부해 세계 최고의 자전거 기구인 국제사이클연맹(UCI)에서 일하는 꿈을 꿨다. 결국 목표를 이루진 못했지만 스위스 프로팀에서 어시스턴트 매니저로 일하며 해외 활동 경험을 했다.

그의 자전거 인생은 2013년 대구시청 감독을 맡은 후 만개했다. 2024년 은퇴할 때까지 11년간 여러 차례 국내외 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수많은 제자를 길렀다. 대한실업자전거연맹이 주는 최우수감독상을 9번이나 받았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여자 사이클 국가대표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그가 이끈 여자 대표팀은 역대 한국 사이클 최고 성적인 금메달 5개와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소강체육대상 지도자상을 받았고, 2020년에는 체육훈장 맹호장까지 수상했다.

‘딸기 농부’ 김형일 전 감독이 스마트 팜에서 묘묙을 심고 있다. 김형일 제공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언젠가부터 자연과 흙에 대한 갈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도자 생활 말년에 그는 틈틈이 딸기를 공부했다. 스마트팜 시설과 원예 등에 대해 인터넷 강의를 들었고, 후계농 제도 등도 익혔다. 그는 2024년 12월 31일자로 사이클 감독직에서 퇴직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17일 경기 여주에 농업회사법인 흰돌팜을 설립했다. 그리고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딸기 스마트팜을 세웠다.

딸기는 겨울 작물이다. 대개 9월에 심기 시작해 12월부터 수확한다. 하지만 의욕이 넘쳤던 그는 욕심을 냈다. 더 일찍 심어서 더 늦게까지 수확해보려 한 것이다. 일명 ‘사계절 딸기’가 그의 새로운 목표였다.

하지만 처음 해 보는 농사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는 두 차례나 애지중지 키우던 딸기밭을 갈아엎어야 했다. 김형일은 “우리 스마트팜에 딸기 묘목 3만 주를 심었다. 육묘 하나에 800~900원인데 한 번 엎어질 때마다 금전적인 피해가 엄청났다”라며 “딸기는 워낙 예민한 작물이다. 낮에는 영상 25도, 밤에도 영상 7도를 맞춰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전기세와 난방비 등을 포함해 큰돈이 날아갔다”고 했다.


김형일 감독(오른쪽)과 자전거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김도윤 군. 김형일 제공

그는 작년 12월 1일을 잊지 못한다. 이날은 그의 농장이 첫 딸기를 딴 날이다. 9월에 다시 정식으로 심은 딸기 묘목에서 빨간 딸기가 열렸다. 거구인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굵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사실 딸기밭에서 눈물을 흘린 게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성공이 절박했던 그는 매일 밤 농장에 혼자 와서 “제발 잘 자라 달라”며 울고 또 울었다. 그는 “마치 3만 명의 신생아를 키우는 심정이었다. 할 수 있는 건 ‘제발 잘 자라 달라’고 비는 것밖에 없었다”라며 “감독을 할 때는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선수를 몰아세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딸기를 키울 때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김형일 전 감독에게 한 때 자전거는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김형일 제공

그의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란 딸기들은 이제 잘 자란다. 우여곡절 끝에 첫 딸기를 수확한 후 정상 가도에 들어섰다. 첫 달에 700kg를 땄고, 1월에는 1000kg을 넘겼다. 모양이 예쁘고, 맛도 좋은 그의 딸기는 인천의 한 5성급 호텔에 납품도 한다. 대부분의 판매는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김형일은 “아직까진 온라인 판매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도 입점했다”라며 “기념일이 되면 많은 사람에게 온라인으로 커피나 케이크를 선물하지 않나. 예쁜 딸기를 선물하는 날이 오도록 노력하고 있다”라고 했다.

딸기 농부로 이제 첫발을 뗀 그이지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제2호 농장, 제3호 농장을 지어 규모를 키우고 딸기 전문 카페까지 차리는 것이다. 딸기 전문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글로벌 딸기 브랜드도 크게 성공한 기업도 있다. 일본에서 처음 생긴 오이시란 딸기 회사는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로 미국 등에서 엄청난 규모의 스마트팜을 운영하고 있다. 그 회사를 벤치마킹에 제대로 된 브랜드 딸기를 만들어 보는 게 그의 새로운 꿈이다.

지난해 퇴임식에서 선수들이 김형일 감독의 앞날을 축복하고 있다. 김형일 제공

그에게는 딸기 말고 또 하나의 희망이 자라고 있다. 사이클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김도윤 군(17)이다.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김도윤은 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주니어 트랙 선수권에서 3관왕(단체추발, 옴니엄, 매디슨)에 올랐다. 김형일은 “승부의 세계에서 오래 살아본 입장에서는 아이가 그런 고통을 안고 살길 바라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노력하는 걸 보고는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김도윤은 현재 장선재 감독이 지도하는 자전거 명문팀 LX에 입단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김도윤은 쉬는 날에는 틈틈이 딸기 농사도 돕는다.

김형일 전 감독의 아들 김도윤 군이 금메달을 따고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김형일 제공

전업 딸기 농부가 됐지만 김형일의 마음의 고향은 여전히 자전거다. 그는 “딸기로 성공한 뒤 언젠가는 다시 사이클로 돌아갈 것이다. 감독을 하는 동안 재정 부족으로 힘든 적이 많았다”라며 “돈을 많이 벌어서 자전거 선수나 팀을 후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아들에게 아시안게임에서 4위에 그친 내 한을 풀어달라고 말한 적은 없다”면서 “그래도 아빠가 못 나가 본 올림픽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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