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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박인권]화재를 참사로 키우는 ‘노후 아파트 도시’의 민낯

입력 | 2026-03-06 23:12:00

서울은 재건축 논란, 지방은 채산성 문제로
화재 취약한 노후 아파트 출구 못 찾는 현실
급증하는 노후단지, 도시 전체 구조적 위험
재건축과 장기수선-사전관리체계 서둘러야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과 교수

2월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10대 여학생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작년 6월 부산 부산진구의 한 아파트에서도 새벽에 젊은 부부가 일 나간 사이 불이 나 10, 7세 자매가 사망했고, 며칠 후 부산 기장군에서도 아파트 화재로 8, 6세 자매가 숨졌다. 이들 아파트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어 초기 진화 실패에 따른 불씨 확산이 피해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는 많은 주택이 밀집돼 있어 작은 사고가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25년 홍콩에서는 40여 년 된 아파트에서 불이 나 건물 7개 동을 태우고 사망자 168명이 발생했다. 우리 아파트에서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국은 2005년에야 비로소 11층 이상 아파트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다. 이 때문에 20년 이상 된 아파트는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밀집 구조로 인해 대형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우리 노후 아파트 수는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30년 이상 된 아파트는 2015년에는 전체 아파트의 5%에 불과했으나 2024년에는 19%로 증가해 250만 채나 된다. 서울에서는 아파트 네 채 중 한 채꼴로 3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다. 20년 이상 된 아파트까지 합치면 48%나 되고 서울에서는 58%에 이른다. 1979년에 지어진 은마아파트처럼 45년 이상 된 아파트도 전국적으로 10만 채, 서울에서만 5만 채나 된다.

노후 아파트는 화재 등 여러 위험에 노출돼 있고, 낡은 배관과 승강기, 좁은 주차장 등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도 좋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밀집된 공동주택의 특성상 낡은 외관은 도시 전체의 미관과 이미지를 해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지 전체를 한꺼번에 수선하거나 철거해야 하므로 단독주택처럼 쉽게 대응할 수 없다.

그나마 서울에서는 재건축을 통한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 아파트 수요가 높으므로 밀도를 높여 재건축하면 적은 비용으로 헌 집을 새집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남 같은 선호 지역에서도 아파트 재건축은 쉽지 않다. 수요가 큰 만큼 재건축에 따른 개발이익도 크고, 이는 부동산 투기, 불로소득, 자산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도 ‘강남 8학군’의 대단지 아파트라는 상징성 때문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며 재건축 문제를 둘러싸고 항상 논란에 휩싸여 왔다.

하지만 노후 아파트 재건축은 해당 단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형 사고 예방, 도시 미관 및 이미지 개선 등과 같은 사회적 편익도 가져오므로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의 배분 문제는 사회적 타협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

사실 노후 아파트 문제가 더 심각한 곳은 지방이다. 지방은 인구 감소로 아파트 수요가 크지 않아 미분양도 흔하므로 아파트 재건축은 채산이 맞지 않는다. 중소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 대도시에서도 재건축은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대전, 울산 같은 지방 도시들은 서울보다 노후 아파트 비율이 높고 앞으로도 빠르게 상승할 것이다. 거대한 노후 아파트 단지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미래의 ‘유령도시’ 모습은 상상만 해도 을씨년스럽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전 관리가 중요하다. 승강기, 배관, 방재시설, 외벽 등 노후화된 시설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수리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관리사무소가 장기수선 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아파트 연한을 고려해 수선 비용을 산정하고 미리 적립해야 한다. 현재 장기수선충당금은 명목적 수준에 머물러 있어 외벽 도색 정도만 할 수 있을 뿐 턱없이 부족하다.

북미에서는 실질적 수선 비용을 충당할 만큼의 적립금(Reserve Fund)을 쌓고 이 재원으로 공동주택을 관리하도록 강제한다. 적정 적립금은 아파트 연령과 수선 경비, 가구 수 등을 고려하면 어렵지 않게 계산된다. 미국 연방주택청, 패니메이, 프레디맥 등 대출기관들은 관리비 운영 예산의 최소 10%를 적립할 것을 요구하고, 전문가들은 15∼40% 적립을 권장한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아파트 화재들은 우리 ‘노후 아파트 도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멀리 내다보지 않고 빠르게 짓기만 한 아파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된다. 적절한 시점의 재건축, 장기수선계획 수립, 적정 적립금 등을 통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어쩌면 불은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참사의 위험은 구조의 문제이다. 이제 그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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