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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초심에는 당신이 있어요”[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입력 | 2026-03-05 23:09:00

고수리 에세이스트


수리는 불행한 가정에서 불우한 유년을 보냈지만, 엄마의 온전한 사랑으로 무사히 자랐다. 훗날 작가가 되었을 때 평생 비밀로 숨겨두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말할 수 없었던 지난한 상처와 말하고 싶었던 충만한 사랑을. 그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의 이야기를. 그로부터 얼마 후, 고등학생 호준은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수리의 책을 읽었다.

“어쩔 수 없이 상처는 받았지만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만 알 수 있는 게 있어요.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온전한 사랑을 받으면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 그 문장으로부터 수리와 호준, 작가와 독자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수리의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며 호준은 가슴이 뛰었다. ‘불행’과 ‘불우’, 그런 말로만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사정이 얽힌 가정에서, 그도 수리처럼 자랐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온 삶이 자신의 상처이자 결핍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숨겼다. 그러나 우연히 읽은 책이 알려주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온전한 사랑으로 자신은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걸. 상처의 이면에는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은 결핍이 아니라 자랑이었다. 자신이 배워온 사랑을 깨달은 호준은 새로운 꿈을 품었다.

“저는 교사를 꿈꾸는 학생인데요. 교사가 되어서 작가님의 문장처럼 학생들의 ‘온전한 내 편’이 되어주는 게 꿈입니다. 작가님이 저에게 꿈을 선물해 주신 거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쓰는 사람으로 남아 주세요.”

호준의 편지를 받았을 때 수리는 울 듯이 마음이 벅찼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의 꿈이 될 줄은 몰랐으니까. 어떤 답장을 보낼지 곰곰 생각하다가 다짐했다. 지금처럼만 써야지. 다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지. 처음 책을 쓰던 마음을 간직하며 오래오래 쓰고 싶었다. 호준과 같은 독자들에게 답장을 보내는 마음으로 수리는 계속해서 책을 썼다.

수리의 책이 하나둘 쌓여 갔다. 그 사이 호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생이 되어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교생실습에 나간 호준은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사랑이 존재한다는 내용으로, 수리의 문장을 인용해 교과서를 만들었다. 수리는 그런 호준의 삶을 지켜보며 조용히 응원했다.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작가와 독자는 책으로 무언가를 주고받는다고. 청소년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호준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호준은 수리의 자랑이었다.

시간이 흘러 수리가 일곱 권의 책을 썼을 때였다. 임용시험에 합격했다는 호준의 메시지를 받았다. ‘저의 초심에는 작가님이 있어요.’ 어른이 된 호준이 말했다. 수리는 답장을 보냈다.

“괴테가 그랬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배우는 법이라고요. 호준님은 좋은 선생님이 될 거예요. 우리는 사랑을 가르쳐 주는 어른이 되어요. 지금 첫 마음을 기억해요. 저의 초심에도 호준님이 있답니다.”

마음의 귀소본능을 믿을 수밖에. 마음을 쓸수록 닮은 마음이 돌아온다. 평생 작가로 살아가는 동안에 수리는 이 마음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어떤 작가의 초심에는 독자가 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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