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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땀과 살과 주름을 그린 화가 황재형 별세

입력 | 2026-02-27 16:21:00


태백 작업실에서 황재형 작가. 동아일보DB



한국인의 땀과 살과 주름을 그린 ‘광부 화가’ 황재형 씨가 27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대 회화과를 다니던 1981년 미술 그룹 ‘임술년’을 결성하고 활동하던 중, 황지 탄광 매몰 사고로 사망한 광부의 작업복을 그린 ‘황지 330’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황재형 작가의 ‘황지 330’(1981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982년 현대인이 놓인 노동의 조건을 몸으로 경험하겠다며 강원 태백 탄광촌으로 이주했다. 2020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작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80년대 사회나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너무 깊었다.…서울에서는 밤낮 술만 먹으면 세상 뒤집어지는 이야기를 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4∙19 세대들의 변절도 봤다. 가장 뜨거운 진실은 현장에 있다고 하니 그것을 찾겠다고 직접 호랑이 굴에 갔다.”





황재형 작가가 1985년 그리기 시작해 2007년 완성한 ‘식사 Ⅱ’.캔버스 위에 석탄가루를 섞은 물감 등 혼합 재료를 써서 갱도 속 광부들의 식사 장면을 묘사했다.



태백에서 광부가 된 작가는 갱도에 내려가 일하면서 몸으로 겪은 바를 ‘식사’, ‘광부초상’ 등의 그림으로 남겼다. 신경림 시인은 1991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에서 “황재형은 목에 힘을 주고 광부들을 지도하겠다고 설치는 화가가 아니라 그들 속에 들어가 삶의 진실을 배워 화폭에 옮겨 놓는 화가”라고 했다.





황재형, 백두대간, 496X206.5cm, 캔버스에 유채, 1993∼2004년. 작가는 눈보라 치는 밤의 에너지와 용솟음치는 땅을 보고 이곳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고요한 풍경을 보고 실망하는데, 이후 ‘모든 것은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수십 년간 이 그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황재형



작가는 탄광 외에도 ‘백두대간’, ‘작은 탄천의 노을’, ‘두문동 고갯길’ 등의 작품에서 강원도를 터전으로 삼으며 한국적인 풍경을 담아냈다. 20여 년간 ‘백두대간’을 그렸던 작가는 “해저에서부터 지각 변동을 타고 솟아 나온 카르스트 지형, 이것이야말로 역동적으로 끌어올려지는 용솟음”이라며 “그 생명력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상은 황 작가가 열악한 탄광 노동의 현실을 고발한 ‘광부 화가’라고 했지만, 생전 작가는 “세상 어디든 희망 없는 곳이 ‘막장’”이라며 “광부는 서울이나 부산에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 속에 살고 직장을 다니지만, 일상에 매몰되어 자아나 본성을 잃어버리면 누구나 ‘광부’가 된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그런 세상 속 광부들에게 이야기와 위로를 건네고 싶다”고 했다.





황재형, ‘아버지의 자리’(2013년).





작가는 2016년 ‘제1회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했고, 2021년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 ‘회천’을 열었다. 유족 측은 “황재형 화백은 1984년 첫 개인전 이후 40여 년간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던 사람들, 노동하는 인간의 실존을 화폭에 담았다”라며 “질기디 질긴 고무를 씹는 것과 같았던 작업의 여정이 이제 마침표를 찍었다”라고 밝혔다.

유족으로 아내 모진명 씨, 아들 제윤 씨, 딸 정아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3월 1일 오전 7시 40분. 02-3010-2000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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