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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도 인증샷도 없다…티노 세갈, 리움서 국내 첫 개인전

입력 | 2026-02-25 15:46:00


‘비물질적 예술’을 표방하는 작가 티노 세갈은 25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념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 세계적 현대무용가 윌리엄 포사이스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뉴시스

차가운 전시장 바닥에 납작 웅크린 한 여성이 천천히 몸을 뒤집는다. 비틀리는 신체 근처엔 권오상 작가의 조형물 2점이 놓여 있다. 크기도, 생김새도 언뜻 실제 사람같은 작품 너머엔 20세기 스페인 조각가 로보의 소녀상과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상이 배치됐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오브제는 점차 단순해지더니, 끝내 철근과 돌로 된 추상적인 조형물에서 시선이 멈춘다. 그런데 이 조형물에서 아까 그 여성이 보이는 것도 같다.

다음 달 3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M2에서 개막하는 ‘티노 세갈’전을 25일 먼저 찾았다. 전통적인 미술 개념에서 벗어나 퍼포먼스와 시각예술 등이 결합된 작업을 선보여 온 영국 태생 독일계 작가인 세갈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살아있는 조각”인 인간을 추상적 조각과 연결한 작품 ‘무언가 당신 코 앞에 나타나게 놔두는 대신 춤추는 브루스와 댄 그리고 다른 것들’을 포함해 총 6종류의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을 전시장 구역별로 나눠 선보인다.

‘구성된 상황’은 소리와 몸짓, 상호작용으로 구성된 작품에 작가가 부여한 명칭이다. 상황을 수행하는 퍼포머는 ‘해석자(Interpreter)’로 불린다. 세갈은 이날 미술관에서 진행된 공개회에서 “작가로 활동한 약 25년간 ‘물질성 없는 예술이 성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 왔다”고 했다. 세갈은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미술관 야외 정원에서 펼쳐지는 ‘이 당신’은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이 두드러진다. 해석자는 관람객을 만난 순간 느낀 감정을 각자 다른 노래로 들려준다. 이날 프리뷰에서는 관객과 눈을 맞춘 채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 윤도현밴드의 ‘너를 보내고’ 등을 불렀다. 미술관 로비에서 벌어지는 ‘무제’에선 군중 속에 뒤섞여 있던 해석자가 슬그머니 관람객에게 다가가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서 사라진다.

“기록되지 않는 전시”로 표현되는 세갈의 작업은 작품이 판매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더 뚜렷해진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작가와 큐레이터, 공증인이 둘러앉아 서류 없이 구두 계약만으로 작품을 사고 파는 것이 원칙”이라며 “작품은 오로지 훈련과 기억으로써 미술관에 소장되며, 이는 ‘원본’과 불변성을 중시하는 미술관에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전시 도록은 발행되지 않고, 홍보용 사진과 소셜미디어 ‘인증샷’ 등도 찍을 수 없다. 세갈은 “지식은 대부분 구전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고 했다. 미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구성된 상황’은 작품당 14만5000달러(약 2억 원)에 팔린 적이 있다.

티노 세갈(Tino Seghal) 작가가 25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국내 첫 개인전 언론공개회를 하고 있다. 작가 세갈은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화두로, 예술을 자본주의적 생상 방식에서 분리하여 기록이나 물질적 오브제도 생산하지 않는 비물질적인 가치의 독창적인 시각 작업을 하고 있다. 2026.02.25 뉴시스

해당 전시가 미술관에서는 보기 드문 유형의 작업인 건 맞다. 하지만 공연 등을 포함해 동시대 예술 전반에서 살펴보면 ‘상호작용과 즉흥성’이란 포인트가 익숙한 느낌도 없지 않다. 세갈과 인연이 깊은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이 2023년 서울의 한 아트센터에서 해석자와 관객이 상호작용하는 공연을 열기도 했다. 세갈이 “한국은 동시대 예술에 개방적”이라고 한 만큼, 국내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6월 28일까지.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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