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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의 뒤통수를 그린 남자, 이건용[김민의 영감 한 스푼]

입력 | 2026-02-18 23:06:00

페이스갤러리 개인전 현장에서



50년 전인 1975년에 했던 퍼포먼스 ‘손의 논리3’을 기록한 사진 앞에 선 이건용 작가.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김민 문화부 기자 

“미대 입학 실기 시험을 보던 날이었죠. 석고상 그리기 과제가 주어지자 학생들이 쏜살같이 달려가 좋은 자리를 차지했어요. 앉을 자리가 없어 고민하다, 아폴로 뒤통수를 그리기로 했습니다.”

1970년대 실험미술 그룹에 참여하며 ‘건빵 먹기’ 같은 퍼포먼스를 했던 이건용 작가(84)를 3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만났습니다. 팔순의 나이에도 미술관에서 분필을 들고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달팽이 걸음’ 같은 퍼포먼스를 하는 이 작가. 그는 자기가 있는 공간을 ‘웅성웅성’하게 만들고, ‘저 사람 뭐야?’ 하며 쳐다보게 만들기를 즐깁니다.

작가가 전한 ‘아폴로 뒤통수를 그릴 때’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리가 없기도 했지만 남들과 다른 걸 하고 싶었다”는 그의 모습은 당시 홍익대 미대 학장이었던 화가 김환기의 눈에 띕니다.

“김환기 학장이 실기 시험하는 학생들을 둘러보다 저를 보고 깜짝 놀라 물었어요. ‘아니, 자네는 왜 아폴로 뒤통수를 그리나?’ 그래서 자리가 없어 그렇다고 할 순 없으니 ‘홍익대에 가려면 아폴로 뒤통수는 그려야죠’ 했죠. 그러자 김환기 선생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이 친구, 합격하면 잘 지켜봐야겠네.’”

지금 생각해도 나는 괴짜

이 작가는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었을 때’, 그로 인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즐거움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 졸업 무렵의 일화도 하나 더 풀어놓았는데요.

“그때가 군사 정권 시기라 학기마다 체육 수업이 있었는데, 저는 입학 직후 한 학기만 들었어요. 그랬더니 체육 선생이 4학년 때 졸업을 못 하게 해요.”

미대 교수들은 “이건용은 실기가 우수하니 키워야 할 사람”이라고 감쌌지만 통하지 않았고, “사정이 어려워 두 학기를 다니긴 어려우니 한 학기만 더 듣게 해달라”는 읍소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고민하던 이 작가는 체육 선생이 진돗개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대문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를 사서 선생의 주소를 알아내 사모님께 건넸어요. ‘고마운데 어쩐 일이냐’는 사모님의 물음에 ‘이건용 이름 석 자만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답했죠. 그 뒤 체육 시간에 선생께 ‘제 이름 이건용 아시죠?’ 했더니 아무 말이 없더군요. 그래서 ‘진짜 진돗개입니다’ 했고 얼마 뒤 ‘체육 수업을 한 학기에 끝내자’는 답을 얻었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읽고, 위기를 돌파하는 능력.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 문화원 같은 곳을 찾아 다니며 유럽의 퍼포먼스 예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호기심은 그를 실험 미술가로 만드는 자양분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10대 때부터 프랑스 문화원, 미국 문화원, 괴테 하우스(독일 문화원) 같은 곳에 있는 새로운 책들을 즐겨 찾았고, 이브 클라인 같은 작가가 퍼포먼스 한 사진을 인상 깊게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생각해도 나는 괴짜이고 기인”이라고 덧붙였죠.

관객 다시 만난 50년 전 현장

“작가님, 연극이나 영화 배우도 잘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의 말에 옆에 있던 부인 승연례 작가와 딸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작가의 딸은 “아버지는 평범한 걸 싫어하고 위기가 있을 때에도 유머로 넘긴다”며 “힘든 일이 생겨도 ‘야, 이거 괜찮아 잘될 거야’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강점”이라고 거듭니다.

딸의 말처럼 이 작가는 입시, 졸업, 파리 청년 비엔날레 참여 등 중요한 고비에서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는지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했지만, 상황이 늘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간호사였는데 목사와 결혼해 장남은 의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이불을 꿰매며 저에게 ‘내가 큰아들을 좀 더 일찍 인정하고 밀어줬으면 세계로 나아갔을 텐데’ 하며 후회의 말씀을 하시더군요.”(승 작가)

이 작가는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미술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건용이네가 망하게 생겼대’ 하고 수군거렸던 기억이 난다”며 “그 시절에 예술가가 된다는 건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 그의 작품이 최근 다시 관객을 만나게 된 계기는 팬데믹 기간 이후로 생겨난 미술 시장의 붐, 그리고 1970∼198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재조명하는 움직임과 맞물려 일어났습니다. 페이스갤러리 서울은 1975년 작가가 백록화랑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동일면적’, ‘실내측정’의 영상과 ‘건빵 먹기’(1977년), ‘화랑 속의 울타리’(1977년), ‘손의 논리3’(1975년) 등 당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들을 처음으로 소개합니다.

당시 작가는 ‘깁스를 한 손으로 건빵을 먹는다’(건빵 먹기)거나, 말려 있는 테이프를 풀며 공간의 사이즈를 측정한다’(실내측정) 등의 지시문을 퍼포먼스에 시나리오처럼 만들곤 했습니다. 이번 전시장에서는 그러한 지시문을 사진과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예전엔 나이 든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젊은 작가들이 화랑을 가득 메웠다’고 이 작가는 당시 분위기를 회고하는데요. 사진과 영상을 통해 50년 전 젊은 미술 현장을 만나 보세요. 전시는 다음 달 28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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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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