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프로포폴’ 에토미데이트 불법 유통 청담동 등에 피부과 클리닉 위장 ‘떴다방’식 운영…출장 주사까지 무분별 투여땐 근육 이상-의식 불명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가 에토미데이트 판매 일당으로부터 압수한 물품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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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말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건물. 세련된 인테리어의 피부 클리닉에서 흰 가운을 입은 남성이 한 여성에게 주사를 놨다. 평범한 수액 치료처럼 보이지만 이 여성은 이내 온몸을 파르르 떨며 경련을 일으켰고, 휴지통에 입을 대고 연신 구토를 쏟아냈기도 했다. 이 여성이 맞은 것은 영양 수액이 아닌 전신 마취제 ‘에토미데이트’였고, 흰 가운을 입은 남성은 의사가 아닌 무자격자였다.
● ‘떴다방 시술소’에 ‘출장 주사’까지
11일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2024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이처럼 에토미데이트를 국내에 불법 유통한 조직폭력배 등 17명을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이 중 1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에토미데이트는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마취제로, 무분별하게 주사하면 근육 이상이나 의식 불명을 일으킬 수 있어 반드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액상담배에 섞어 피우면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는 이른바 ‘좀비 담배’의 원료로도 꼽힌다. 태국 등 동남아와 일본 등에선 좀비 담배를 피운 젊은이가 길거리에서 휘청이는 상황이 속출하며 사회 문제로 번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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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이라고 불린 한 소매업자는 청담동에 피부과 클리닉을 연상케 하는 간판과 인테리어를 갖춘 뒤 가짜 의사를 고용해 1회당 20만 원을 받고 에토미데이트를 투여했다. 보안 메신저로만 예약을 받아 단속을 피했다. 또 다른 업자는 투약 장소 노출을 막기 위해 강남 일대의 아파트나 빌라를 단기 임대해 ‘떴다방’식으로 운영하며 전용 차량으로 고객을 실어 날랐다. 이 일당은 주거지에 방문하는 ‘출장 주사’ 서비스까지 운영했다. 최근 연예인 불법 수액 주사로 논란이 된 ‘주사 이모’와 비슷한 형태다.
고객은 주로 수면 장애를 겪는 유흥업소 종사자였다. 한 여성 투약자는 19시간 동안 앰플 50여 개를 연달아 맞기도 했다. 경찰이 공개한 불법 시술소 내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투약 이후 약기운에 취해 침대에 쭈그려 앉아있거나 투약자에게 “제발 한 방만 더 놔달라”며 양손을 빌어 애원하는 여성의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지난해 1월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총 4억2300만 원에 달하는 범죄 수익에 대해서도 기소 전 추징보전 결정을 받아냈다.
● 마약류 적발 1년 새 17% 증가
에토미테이트는 강한 부작용과 의존성 때문에 오용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그간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아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마약류가 아니면 구입과 조제, 투약 전반에 대한 감시가 느슨하고 특히 수출할 땐 도매상이 수출 보고를 완료하면 실제 선적했는지까지는 추적하기 어려웠다. 불법 매수자에게도 100만 원 이하 과태료의 솜방망이 처분만 부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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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관세청, 식약처 등과 함께 이 같은 신종 마약류를 특별 단속하기로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을 유통하거나 투약해 적발된 인원은 2024년 1만326명에서 1만896명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압수량도 381kg에서 448kg으로 17.6% 증가했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