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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건강한 사람만 용인되는 ‘병든 사회’

입력 | 2026-02-07 01:40:00

인류 역사상 가장 쾌적한 현대사회… 타인을 향한 배제와 통제로 이뤄져
과거에는 집에서 임종 맞이했지만, 일상서 죽음 받아들이기 힘들어져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구마시로 도루 지음·이정미 옮김/336쪽·2만1000원·생각지도



이 책은 현대인이 인류 역사상 가장 질서 정연하게 정돈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쾌적함이 사실은 노키즈존이나 노실버존 등에서 보듯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고 통제한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의 과학소설(SF) 작가 이토 게이카쿠(伊藤計劃)는 근미래를 묘사한 ‘세기말 하모니’에서 건강을 사회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 세상을 그렸다. 정부는 개인의 건강 상태를 상시 관리하기 위해 모든 시민의 몸에 초미세 기계를 삽입한다. 조금이라도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면 강제 치료가 이뤄진다. 그 결과 사람들은 모두 건강하게 100세 이상 살 수 있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묘하게 불편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일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이 작품을 언급하며 “‘건강’하지만 ‘부자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근미래를 상상할 필요도 없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청결하고 안전하며 질서 정연한, 그야말로 쾌적한 사회에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쾌적함이 타인을 향한 노골적인 배제와 통제를 토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자유를 잃어버렸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료화’다.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간주되지 않았던 다양한 증상과 행동이 질병이나 장애로 규정되고 치료의 대상으로 편입되는 현상을 의료화라고 부른다. 과거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행동과 태도는 이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자폐스펙트럼장애(ASD)로 해석되며 의료와 복지의 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료와 복지의 지향은 자본주의 사회에 원활히 적응하는 삶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내세운 ‘1억 총활약 사회’를 언급하며 “사람들은 정신질환의 정도와 사회 적응의 수준에 맞춰 ‘1억 총활약 사회’ 속 어딘가로 재배치되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1억 총활약 사회’는 50년 뒤에도 인구 1억 명을 유지하고, 1억 명 모두 활발하게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슬로건이다. 틀 바깥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선 20세기 초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환자는 단골 의사의 왕진을 받았고, 가족과 이웃이 지켜보는 가운데 삶을 마무리했다. 병든 사람 역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고도 경제 성장을 거치며 질병과 죽음은 점차 일상의 공간에서 밀려났다. 자택 사망은 꾸준히 줄어든 반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크게 늘었다.

의료 인프라의 발달은 삶에서 병과 죽음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상 속에서 병과 죽음을 받아들일 여지는 줄어들었고, 현대인은 자신이나 가족에게 질병과 죽음이 닥쳤을 때 이를 마치 기습적인 사건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병과 죽음을 삶의 일부로 인식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추구해 온 사회는 분명 많은 고통을 줄였지만, 동시에 불완전함과 다양성을 포용하는 능력 역시 약화시켰다고 본다. 의료와 복지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체계가 만들어낸 차별과 배제를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책이다. 일본의 사례를 다루지만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쾌적함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우리가 여전히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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