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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법률사회 美 vs 공학국가 中… ‘시스템 충돌’

입력 | 2026-02-07 01:40:00

美, 법학 전공 대통령이 대부분… 환경 파괴 등 법률적으로 해결
규제에 갇혀 제조업 역량 잃어… 中, 이공계 출신 권력자에 의해
철도-태양광 등 국가 개발 속도… 민간 기업엔 규제 정책 쏟아내
◇브레이크넥/댄 왕 지음·우진하 옮김/424쪽·2만2000원·웅진지식하우스



신간 ‘브레이크넥’은 미국과 중국 국가 운영 체제의 차이를 예리하게 포착한 책이다. ‘변호사의 나라’ 미국은 1984∼2020년 민주당 대통령 및 부통령 후보가 예외 없이 법학을 전공했다. 반면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은 6대 국가주석 후진타오가 칭화대 공대 출신이고, 7대 시진핑 주석도 칭화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2002년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이었다. 동아일보DB


‘변호사의 나라’ 미국,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중국 산업 분석가로 손꼽히는 저자는 두 초강대국을 이렇게 정의한다.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살았던 저자는 양국이 전혀 다른 작동 방식을 갖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말(言)’이 지배하는 미국과 ‘기술’이 주도하는 중국. 저자의 한 줄 평을 중심으로 이상적인 국가 운영 방식은 무엇일지 고민하며 양국이 직면한 위협을 따라가다 보면, 묘하게도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이공계 출신 권력자들의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급부상했으나 억압 정치의 대가를 뒤늦게 치르는 나라.”

중국이다. 시작은 1980년대였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개혁·개방을 표방했다. 그러곤 공학자 출신을 정부 최고위층으로 끌어올렸다. 이들의 목표는 국방력 강화. 이후 도로, 교량, 발전소, 새로운 도시 건설 등 대규모 국가 개발 계획이 착수됐다.

공학자 중심 국가의 장점은 명확했다. 그들은 도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생산 기반시설을 널리 구축하는 데에 탁월했다. 덩샤오핑의 개혁이 시작된 뒤로 중국의 하드웨어 역량은 급속히 탄탄해졌다. 현재 중국은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 모두를 더한 것보다 더 긴 고속철도망을 보유하고 있다. 태양광 및 풍력발전 설비 역시 다른 국가들을 모두 합친 규모와 맞먹는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성장엔 폐해가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디디추싱’과 결제대행업체 ‘앤트그룹’ 등 신규 기술 기업을 향한 강한 규제 정책을 쏟아냈다. 소비자 중심보다는 국가 전략상 필요한 산업을 우선시했던 것. 합리적이지 않은 규제에 투자자 등 부유층이 중국을 떠나는 ‘룬(潤·Run)’ 현상도 일었다. 저자는 “일련의 정책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중국의 경제는 훨씬 나아졌을 것”이라고 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초를 달성했으나 이제는 규제와 절차에 갇혀 역동성을 잃어버린 나라.”

이 한 줄 평은 미국의 것이다. 한 세기 전 미국은 현 중국과 비슷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국내에선 건설 산업에 대한 열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법률가의 시대가 도래했다. 당시 미국 곳곳에선 원유 유출 사고, 화학물질 누출 사고 등 경제성장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고학력 법률가들이 사회 전반에 부상했다.

법률가들의 관심사는 ‘소송’과 ‘규제’였다. 물론 이들 덕에 환경 파괴나 불필요한 건설 등 과거의 문제가 해결됐지만, 병폐도 있었다. 저자는 “법률가들이 장악한 미 정부는 국가 전략보다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거나 위원회를 설치하는 데에 익숙해졌다”고 평한다. 미국 내 변호사 숫자만 인구 10만 명당 400명, 유럽 국가 평균의 3배다. 이들이 구축해 놓은 절차 중심주의는 기업과 대학,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제조업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전통 제조업체들은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했고, 미국은 제조 인력과 지식을 보존하지 못했다. 미 국가핵안보국(NNSA)이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기밀 부품 제조법을 잃어버린 사건도 있었다. 저자는 “만약 이 세상에 종말이 다가와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면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다”며 “전쟁은 첨단 정보기술(IT)만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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