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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양종구]“인생을 경험하고 싶다면 42.195km를 달려라”

입력 | 2026-02-04 23:15:00

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장급


필자는 2009년 11월 1일(현지 시간) 온몸 55%에 화상을 입은 이지선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당시 컬럼비아대 석사과정)와 함께 뉴욕 마라톤에 출전했다. 화상을 입으면 피부 호흡에 문제가 있어 조금만 달려도 숨이 가쁘다. 42.195km 풀코스 완주는 다소 무리한 도전이었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였던 그는 기금 모금을 위해 출전을 강행했다. 함께 참가한 사람들이 “힘들면 지하철 타고 오라”고 걱정했다. 이 교수는 7시간 22분 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걷다 쉬다 울다’를 반복했다는 그는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에 새삼 공감하게 됐다. 수많은 고비가 왔지만 참고 견디니 완주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마라톤 영웅’ 자토페크가 한 명언

흔히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한다. 1952년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와 1만 m, 마라톤까지 3관왕에 오른 체코의 마라톤 영웅 에밀 자토페크도 “달리기를 원한다면 1마일을 뛰어라, 하지만 색다른 인생을 경험하고 싶다면 마라톤을 하라”고 했다. 마라톤과 인생은 장기 레이스로 숱한 고비를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다.

마라톤 대회에서 달리다 보면, 35km를 넘는 순간부터 걷는 사람이 많아진다. 경련이 일어나 근육을 주무르거나, 절뚝거리며 걷기도 한다. 아예 누워서 거친 숨을 몰아 쉬는 사람도 있다. 소위 ‘마의 35km’라고 불리는 이 구간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 영혼의 바닥까지 확인하게 되는 잔인한 구간이자, 완주의 환희로 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 고비를 넘기 위해 세계적인 선수들은 대회 3개월 전부터 주당 230km 이상 달린다. 하루 평균 약 40km를 달리는 강행군이다. 마의 35km를 넘어 끝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고 완주하기 위한 특별 훈련도 한다. LSD(Long Slow Distance)로 35∼45km를 대회 레이스 속도의 80%로 달린다. 대회를 앞두고 최소 4회 이상 실시한다. 1km를 90∼100%로 달리고 100∼200m를 조깅한 뒤 다시 1km를 달리는 것을 10회 이상 반복하는 인터벌 트레이닝도 한다. 체내에 생기는 피로물질 젖산 내성을 키우는 것으로 젖산 역치 훈련이다.

마의 35km 넘으면서 인생을 배운다

마스터스 마라토너도 대회 전에 30∼35km 이상 달리는 LSD를 최소한 2∼3회는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35km 이후는 그야말로 ‘지옥’이다. 달려 본 사람은 안다. 준비가 안 되면 거의 모든 부위 근육에서 경련이 생긴다. 달릴 수가 없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고 레이스 당일에도 다양한 고비를 넘어서 결승선을 통과해야만 ‘마라토너’가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풀코스를 완주한 모든 러너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12월 청년(15∼29세) 실업률이 6.2%로 1년 전에 비해 0.3%포인트 오르는 등 청년들이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청년층을 포함한 마라톤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 메이저 대회는 물론 지방 군소 대회도 참가 신청이 조기 마감한다. 실제로 시도 때도 없이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반가운 현상이다. 운동이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오래전부터 나왔다. 마라톤 같은 힘든 운동은 자기 효능감을 높여 자신감을 키워준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 동료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거침없는 활력과 에너지의 상징 ‘붉은 말(赤馬)’의 해가 벌써 한 달을 넘었다. 입춘도 지났다. 달리기 좋은 계절이 오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달리며 희망과 꿈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인간 기관차’ 자토페크는 이런 말도 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장급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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