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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 안전자산? 악마의 금속? 은값 반등에 속으면 안되는 이유[딥다이브]

입력 | 2026-02-05 10:00:00


요즘 금융시장이 어지러울 정도로 요동치고 있죠. 그중에서도 투자자들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던 자산은 바로 은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눈부신 급등세를 보였던 은 가격이 불과 하룻밤 사이에 30% 넘게 빠졌기 때문이죠.

미친 듯이 급등하던 은 가격이 갑자기 고꾸라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1980년과 2011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는데요. 은은 왜 ‘악마의 금속’일까요. 금과는 뭐가 다른 걸까요. 역사가 알려주는 은 시장의 교훈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최근 은값은 고점인 121달러에서 38% 급락한 뒤, 다시 10% 넘게 상승해 온스당 85달러 안팎에 머물고 있다. 여전히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1년 가격 상승률은 161%나 된다.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2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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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쌓았던 은값 거품
지난 1월, 모두가 은에 열광했습니다. 석 달 만에 150% 넘는 가격 상승, 역사상 첫 온스당 100달러 돌파. 은에 투자하는 상품인 ‘아이셰어즈 실버 트러스트(iShares Silver Trust) ETF’의 하루 거래량은 1월 26일 394억 달러까지 치솟았죠. 엔비디아(약 230억 달러)나 테슬라(220억 달러) 주식보다도 더 인기를 끈 겁니다.

은 투자 열풍은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월 한 달간 ‘코덱스(KODEX) 은선물 ETF’에 무려 8151억원의 개인 순매수가 유입됐다죠. 다들 반짝이는 은을 갖고 싶어 안달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시간으로 1월 30일, 갑자기 시장이 뒤집혔습니다. 온스당 121달러를 돌파했던 은 가격이 하루 만에 31% 곤두박질친 거죠. 2월 2일엔 장중 온스당 75달러까지 추락했어요. 고점보다 38%나 빠졌죠.

최근 한달 은 가격 추이. 1월 내내 무섭게 오르다가 뚝 떨어졌다. www.bullionvault.com


물론 이때 코스피도, 금값도 급락을 맞았습니다. ‘워시 쇼크’, 즉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란 평가를 받는 케빈 워시가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된 영향이란 해석이 나왔는데요. 하지만 은값이 다른 자산보다 몇배로 크게 요동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빚(레버리지)을 써서 은값 상승에 베팅한 투기적 수요가 워낙 많이 쌓여있었고, 그게 한꺼번에 무너졌기 때문이죠.

지난 1월 말 은값이 미친 듯이 뛰자, 시카고상업거래소(CME)는 은 선물 증거금을 연이어 크게 인상했죠. 여기에 케빈 워시가 연준 의장으로 지명될 거란 소식까지 나왔어요. 악재가 겹치면서 무섭게 뛰던 은값이 흔들리기 시작했는데요.

일단 은값이 떨어지자, 높은 레버리지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은 투기 세력이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직면하게 됐고요. 이를 막지 못한 투자자들이 줄줄이 강제 청산당하고 맙니다. 이로 인해 은값이 추가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졌고, 결국 역대급 폭락으로 이어진 거죠.

투기세력이 그동안 빚으로 쌓아올렸던 은값의 거품이 순식간에 빠지고 말았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하루 만에 31%는 정말 심하네요. 이를 보며 은의 오래된 별명을 떠올렸습니다. 은은 역시 ‘악마의 금속(Devil‘s metal)’이에요!


은빛이 잿빛 된 ‘실버 목요일’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내 현금 자산은 인플레이션에 녹아내릴 거야. 지금은 실물자산에 투자할 타이밍이야.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 있는 안전한 자산이라면 금 아니면 은이 아닐까?’

아마 최근 은을 산 투자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약 5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한 유명한 투자자가 있었죠. 바로 헌트 형제. 텍사스 출신 석유재벌 해롤드슨 라파예트 헌트의 세 아들(넬슨 벙커 헌트, 윌리엄 허버트 헌트, 라마 헌트)입니다.

헌트 형제 중 넬슨 벙커 헌트(왼쪽)과 윌리엄 허버트 헌트(오른쪽)의 얼굴을 새겨 만든 주화의 모습. 이들은 1980년 은 시장을 초토화시킨 ‘실버 목요일’의 주역이다. 코인숍 홈페이지


1970년대 초 달러 약세와 초인플레이션 시대를 예견한 헌트 형제. 당시 온스당 2.5달러이던 은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확보한 은 가격이 뛰면 그걸 담보로 대출 받아 다시 은 선물계약을 싹쓸이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은을 축적해나갔죠. 1979년 말, 이들이 확보한 은 실물과 선물계약은 무려 2억 온스 어치에 육박합니다. 전 세계 은 공급량의 약 3분의 1이 헌트 형제 손에 있었던 거죠.

시중엔 은이 동나면서, 은값은 수직으로 치솟습니다. 1979년 초 온스당 6달러였던 가격이 1980년 1월 18일 49.45달러를 찍었죠. 1년 만에 700% 넘게 폭등한 겁니다. 미친 은값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집집마다 대대로 물려받은 은 식기와 아기용 은수저를 내다 팔았고요. 곳곳에서 은 절도 사건이 급증했죠. 감광재료인 은 때문에 필름 가격이 덩달아 급등하면서 병원에선 엑스레이 필름마저 구하기 어려울 지경이 됩니다.
보다 못한 미 연준과 뉴욕상품거래소(COMEX)는 대대적인 은 시장 규제에 나섭니다. 헌트 형제의 추가 은 매입이 막혔고요. 드디어 은 가격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는데요.

1980년 3월 26일, 뉴욕타임스에 티파니앤코의 ‘비양심적(UNCONSCIONABLE)’이란 제목의 광고가 실렸습니다. 은값 폭등에 분개한 월터 호빙 티파니앤코 회장이 헌트 형제를 “수십억 달러 상당의 은을 사재기해 가격을 폭등시켰다”며 공개 저격한 거죠.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3월 27일, 하루 만에 은값이 33% 급락합니다. 헌트 형제가 COMEX의 1억 달러짜리 마진콜을 막지 못하면서 청산 당했기 때문이죠. 이른바 ‘실버 목요일(Silver Thursday)’입니다.

1980년 3월 26일 티파니앤코가 뉴욕타임스에 낸 광고. 당시 은값 폭등으로 티파니앤코는 전체 재고의 가격을 재산정하기 위해 하루 동안 은제품 매장을 폐쇄해야 할 정도였다. 이에 분개한 월터 호빙 티파니앤코 회장은 ‘비양심적’이라며 헌트 형제를 비판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십억 달러, 네, 수십억 달러 상당의 은을 사재기하여 가격을 폭등시키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이 아기용 숟가락부터 찻잔 세트, 사진 필름 등 은으로 만든 제품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구매해야 하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십억 달러를 잃은 헌트 형제는 시장 조작 혐의로 막대한 벌금까지 부과받았고요. 결국 파산을 신청하는 처지가 됩니다. 실버 목요일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10달러로 추락한 은값은 이후 아주 오래, 약 30년 동안 10달러 안팎에 머물렀습니다.

강렬한 급등과 처절한 붕괴. 그 극심한 변동성 때문에 은에는 ‘악마의 금속’이란 별명이 붙었죠. 눈부시게 빛나다가도 한순간 잿빛으로 변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투자자산으로서 은이 갖는 무서운 속성입니다.


은은 금 같은 안전자산일까?
바로 이 점에서 은은 금과 다릅니다. 신뢰할 만한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통하는 금과 달리, 은 가격은 때론 미친 듯 널뛰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곤 하죠. 그래서 은을 ‘스테로이드 맞은 금’이라고도 부르는데요.

그럼 왜 이렇게 변동성이 클까요. 일단 은 시장은 규모가 작습니다. 금 시장의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죠. 그만큼 투기성 자금에 휘둘리기가 쉽고요.

은은 독특한 원자재입니다. 귀금속과 산업재,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죠. 은이 모든 금속 중 열과 전기 전도성이 가장 높아서 산업적 가치가 높기 때문인데요. 생산되는 은의 절반 이상이 태양광패널,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의 핵심 소재로 쓰입니다.

귀금속과 산업재라는 이중 정체성은 은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이다. 게티이미지


이렇게 은이 쓰이는 곳이 많으면 은값엔 좋은 일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하고 은에 투자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따져보면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오히려 산업재로 많이 쓰이다보니, 구리나 철 같은 다른 금속처럼 경기를 너무 많이 타게 되죠. 경기가 고꾸라지고 산업수요가 줄면 가격이 되레 급락할 수 있는 겁니다.

자고로 안전자산이라면 금처럼 경기가 나쁠수록 오히려 빛나야 하잖아요. 그래야 사람들이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해서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어할 거고요. 그런데 은은 그렇지 못합니다. 산업재로서의 유용함이 은의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셈이죠.

사실 은은 금만큼 희귀하지도 않아요. 어떤 자산의 희소성을 판별하는 지표가 총 재고량(현재 유통되는 물량) 대비 연간 생산량(1년간 신규 공급 물량), 즉 ‘Stock-to-Flow(S2F)’인데요. 금은 이 지표가 62에 달하죠. 다시 말해, 현재 전 세계 금 보유량만큼을 추가하려면, 앞으로 금을 62년이나 더 캐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새로 추가될 수 있는 양이 너무 적고, 따라서 장기적으로 가치가 상승할 거란 전망이 나오는 거죠.

그럼 은은? 이 비율이 22 정도입니다. 은을 앞으로 22년 더 캐면 지금의 재고량(산업재로 소비돼 사라진 건 제외)만큼이 추가된다는 의미이죠. 희소성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닙니다. 좀 애매하죠.


역사의 반복 vs. 이번엔 다르다
정리하자면 은은 금과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 썩 믿음직스럽진 못합니다. 하지만 ‘은=안전자산’이란 공식은 투자 세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고요.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금값이 뛰는 시기엔 덩달아 은값도 뛰곤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의 양적 완화로 막대한 달러가 풀렸던 2010~2011년에도 그랬었죠.

당시엔 미국의 부채한도 협상 실패로 미국 신용등급이 하락할 거란 위기감이 고조됐고요. 전 세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 그 중에서도 은 매수에 뛰어듭니다. 이번엔 헌트 형제 같은 ‘고래’ 대신 레버리지 높은 투자에 나선 투기적인 개인 투자자가 중심이었죠. 그때도 지금처럼 중국 투자자들이 열성적인 은 투기세력이었는데요. 8개월 동안 금값이 26% 뛸 때, 은값은 165%나 급등했고요. 2011년 4월 정점에서 은값은 49.82달러로, 31년 만에 전고점을 뚫습니다.

1970년부터 최근까지 은 가격 추이. 1980년과 2011년, 그리고 2026년의 가파른 상승이 눈에 띈다. www.macrotrends.net


“마치 1999년(닷컴버블)으로 돌아간 것 같다”, “은은 여전히 금보다 저평가돼있다”, “은 가격이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투자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던 2011년 4월 말. 시카고상업거래소(CME)가 은 선물 계약의 증거금을 대폭 인상하며 방아쇠를 당깁니다. 동시에 조지 소로스의 헤지펀드가 은 매도에 나섰다는 보도가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었죠. 은값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고, 은 선물 시장에선 마진콜 폭탄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추가 증거금을 감당 못한 투기 세력의 청산이 이어졌고요. 5거래일 만에 은값은 30%나 폭락했죠.

그럼 당시 투자자들은 ‘역시 은은 악마의 금속이야!’라며 바로 손 털고 은 시장을 떠났을까요? 아니, 그 반대였습니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달러 약세라는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며 “저가 매수 기회”를 외치는 전문가들이 많았죠. ETF와 달리 실물 은의 가치는 여전하다며 은괴를 사모으는 이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해 말 은 가격은 20달러대로 떨어졌고요. 이후 무려 14년 동안 40달러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1980년과 2011년, 그리고 2026년. 은 가격 폭등과 폭락의 패턴이 상당히 비슷하지 않나요? ‘달러가치 하락 우려→안전자산 쏠림→투기 세력의 레버리지 투자→은값의 가파른 폭등→투기 광풍’이 펼쳐지고요. 이어서 ‘거래소의 규제 강화→은값 하락→마진콜 도미노→강제청산 행렬→은값 폭락’이 벌어집니다. 몇 달 만에 은값이 몇 배로 뛰고, 단 며칠 만에 은값이 3분의 1토막 난 것도 비슷하죠.

다만 현재(2월 3일 기준) 은값은 다시 반등해 10% 넘게 뛰었습니다. 개미투자자들이 몰린 레딧엔 “지금이 매수 적기”라며 투자를 독려하는 글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죠. ‘이번엔 다르다’라는 말, 얼마나 믿을 만할까요. 결말은 알 수 없지만 왠지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2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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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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