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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원호]정당은 왜 존속하는가

입력 | 2026-02-02 23:12:00

근래 십수 년 반복된 보수정당 ‘간판갈이’
尹정당으로 대선 승리했다 또 정체성 위기
보수 핵심 기제-가치 사라지고 있는 시대
미래세대 위한 비전 제시만이 존속의 이유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77만 책임당원의 압도적 찬성으로 2월 중 당명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불과 4개월 앞으로 다가온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의 간판을 바꾸는 것은 매우 비상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비유하자면,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브랜드명’을 포기하고 회사 상호를 바꾸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물론 이런 정당의 명칭 변경은 늘 있어 왔다. 이름을 기억하기 벅찰 정도로 수없이 많은 정당이 ‘민주’와 ‘국민’, ‘개혁’과 ‘혁신’과 ‘통합’을 변주하면서 명멸해 온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빈번한 정당명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당’을 정확하게 찾아가는 한국 유권자의 능력은 외국 정치학자들의 오랜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작명소와 명리학, 마케팅과 색채과학을 널리 동원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당 명칭 변경과 관련한 최근의 새로운 경향이 있다면, 아마 다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째, 과거 정당 명칭 변경이 정치세력 간 이합집산의 결과였다면, 최근에는 정당 구성원과 내용이 거의 바뀌지 않은 채 순수한 ‘리브랜딩(rebranding)’ 혹은 ‘간판갈이’인 경우가 많다. 둘째, 근래 십수 년 동안의 이러한 정당 명칭 변화는 보수정당에 주로 편중됐다. ‘보수의 위기’인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은 정당의 ‘개명’이 변신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표를 던지더라도 정당명을 잘 기억하지는 못한다. 선거에서 어느 당이 박정희(박근혜)의 정당, 김영삼의 정당, 김대중의 정당, 노무현의 정당인지를 알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당 존속의 비밀은 정당 브랜드가 아닌 강력한 리더의 브랜드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 국민의힘이 정치 경험이 전무한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것은, 길 잃은 정당에 정치적 정체성을 부여할 가장 손쉬운 방안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탄핵당한 박근혜의 그림자를 지우고 ‘윤석열의 정당’으로 선거를 치러야 승산이 있으며, 지더라도 그런 방식으로 정당이 존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정당사는 물론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당내 뿌리도 연고도 없고 심지어 정치적 적대관계에 있었던 개인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거대 정당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윤석열의 정당’이 극적으로 대선에 승리한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보수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우리가 지금 맞이한 시대는 뉴욕타임스(NYT)의 대표적인 보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말하는 것처럼 전망과 믿음이 사라지고 니힐리즘(허무주의)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시대다. 민주주의에 대한 낙관도, 유엔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에 대한 믿음도, 시장과 자유무역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풍요에 대한 희망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는 시계 제로의 시대다.

흥미롭게도 민주주의, 세계질서, 시장과 자유무역, 과학기술은 모두 보수주의의 핵심 기제와 가치들이기도 하다. 그 전망이 사라진 빈자리를 지금 우리는 개인과 집단과 국가의 이기주의, 타자에 대한 혐오가 채우는 것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니힐리즘이야말로 공동체가 쌓아 올린 규범과 도덕을 파괴하고 약육강식의 정치가 싹트는 토양이 아니었던가. 미국 공화당이 도널드 트럼프에 의해 잠식당하고 국민의힘이 윤석열에 의해 지금의 자리까지 끌려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제 국민의힘은 정확하게 그 정체성을 씻어내고 새롭게 스스로를 정의해야 할 짐을 지게 됐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만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출당이건 사과건 그것이 결코 가능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손쉬운 것이 정당의 이름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러나 정당의 일이 단순히 권력을 쟁취하는 것을 넘어서 유권자들에게 미래의 꿈을 파는 사업이며, 정당의 이름이 텅 빈 기표가 아닌 이상, 그 내용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벅찬 과제가 남겨져 있는 셈이다. 적어도 미국의 보수가 트럼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이미 고민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보수정당은 여전히 윤석열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은 왜 존속하는가. 보수이건 진보이건, 우리 세대가 물려받은 세상보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세상이 더 힘들고 고단한 세상이 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지금은 이름을 뭐라고 바꿔도 줄서서 찍어줄 유권자들이 있겠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유권자들에게 미래의 전망을 보여주고 이들을 어디로 이끌고 가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정당이 존속할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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