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식 동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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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프트노믹스(Swiftnomics)’라는 용어가 있다. 미국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와 경제학이라는 뜻의 ‘이코노믹스’를 합친 말이다. 블룸버그 통계에 따르면 스위프트는 최근 4년간 총 10억 달러(약 1조4400억 원)에 이르는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스위프트노믹스의 핵심은 개인의 수익 규모가 아니다. 그의 공연이 열리는 도시마다 호텔은 만실에 가깝고 교통·외식·관광 소비가 급증한다. 공연 하나가 도시의 소비 구조를 움직이는 것이다.
미국 내슈빌은 이를 잘 보여주는 도시다. 작은 지방도시였던 이곳은 스타의 탄생 스토리를 일회성 흥행으로 소비하지 않고 음악산업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끌어안았다. 공연과 제작을 중심으로 관광·숙박·외식 산업이 확장되며 내슈빌은 1년 내내 문화산업이 작동하는 ‘재생산형 문화 도시’로 변모했다. 영국 런던의 O2 아레나는 문화 기반 도시 재개발의 대표 사례다. 변두리 항만의 낡은 창고지대를 공연장과 업무지구로 재편하며 런던 동부의 복합 문화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선진국 주요 도시들은 이처럼 문화 역량을 도시 경쟁력 전략의 중심에 둔다. 이제 한국을 보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창작 뮤지컬 ‘어쩌다 해피엔딩’은 세계 주요 시상식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고, BTS와 지드래곤을 비롯한 K팝 아티스트들은 글로벌 투어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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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분명하다. 민관 역할 분담과 수익 구조가 설계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전만 먼저 제시됐고, 사업 주체가 바뀔 때마다 개발 방향이 흔들렸다. 콘텐츠를 ‘산업’이 아닌 부지 제공을 통한 ‘유치’의 문제로 접근한 한계도 컸다.
관건은 제도와 정책 설계에 있다. 첫째, 지자체·민간·중앙정부의 역할을 명확히 분담해야 한다. 지자체는 산업 클러스터 부지 제공과 관리, 민간은 제작·투자·운영, 중앙정부는 인허가와 재원 조달을 맡는 삼각 협력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K콘텐츠 공약은 도시 산업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설계돼야 한다. 공연 이후에도 아이디어·음악·스토리·캐릭터 등 창작자산(IP)과 경험이 지역에 축적되고, 이를 이어갈 인력이 자리 잡아야 한다. 셋째, 도시 고유의 색채를 담은 브랜드 전략과 결합돼야 한다. 단체장 임기와 무관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법적·재정적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마지막은 이 모두를 가능케 할 ‘컨트롤 체계’의 확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는 K콘텐츠를 활용해 도시 경쟁력을 설계할 계기다. 여야가 단순히 경쟁을 넘어 중앙정부·지자체·민간의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배분해 정책으로 작동시킬지, K콘텐츠를 장기적인 도시 산업으로 발전시킬 비전을 제시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미 한국 문화를 향해 오고 있다. 남은 과제는 이를 맞이할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이제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 한국형 스위프트노믹스, 지방선거에서 설계할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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