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기회 놓친 어르신 위한 ‘늘푸름학교’ 평균 74.2세 ‘늦깎이 학생’ 45명 졸업 문해교육으로 초·중학 학력 인정 AI로 재현한 어린 시절 영상도 상영
28일 서울 영등포구청 별관에서 열린 2025학년도 영등포 늘푸름학교 졸업식에서 한 만학도 졸업생이 가족 대표의 축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청 별관에 마련된 ‘늘푸름학교’ 2025학년도 졸업식장에서 검은 학사복을 입은 김영만 씨(69)가 강단에 올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두 손에는 편지 한 장이 쥐어 있었다. 2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보내는 인생 첫 편지였다. 김 씨는 늘푸름학교에서 한글을 배운 뒤 늦었지만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글로 남길 수 있었다. 객석에 앉은 학우들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쳤고 이내 박수가 이어졌다.
이날 졸업식을 맞은 졸업생은 모두 45명. 평균 나이 74.2세의 ‘늦깎이 학생’들이다. 가난한 가정 형편 탓에 어린 시절 연필 대신 연장과 농기구를 들었던 이들은 뒤늦게 배움의 기회를 만났다. 졸업생들은 손에 졸업장을 들고 자녀·손주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오랜 꿈을 이뤘다.
광고 로드중
28일 서울 영등포구청 별관에서 열린 2025학년도 영등포 늘푸름학교 졸업식에서 만학도 졸업생들의 어린시절 모습을 AI로 복원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이날 졸업식은 수년간 함께한 학교생활을 담은 영상 상영으로 시작됐다. 학예회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모습, 과학관과 영화관 나들이, 김장과 제빵 체험까지 학교 안팎에서 보낸 시간들이 화면에 차례로 담겼다. 이어 늘푸름학교장인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이 개근상과 우정상 등 우수 학습자에게 상장을 전달했다. 졸업생들은 깜짝 선물로 준비한 감사패를 최 구청장에게 전하며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졸업생들의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어르신들은 “수학도 배우고 영어도 배워서 행복하다”는 마음을 담아 노랫말을 개사해 불렀다. 졸업식의 마지막은 학사모를 하늘로 던지며 찍는 기념사진으로 마무리됐다.
행사장 한편에는 졸업생들이 직접 그린 시화 작품도 전시됐다.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못 갔다”, “공부는 대신할 수 없는 기쁨이다”, “별처럼 반짝이고 싶은 인생” 등 각자의 삶이 담긴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중학 과정을 마친 오태자 씨(72)는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됐다”며 감사의 편지를 낭독했다. 가족 대표로 나선 박종녀 씨(74)의 사위 박상준 씨(50)는 “학교에서 사춘기 소년, 소녀처럼 웃고 떠드시던 어머니와 친구분들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라며 “두 딸에 손자까지 키우시고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은 어머니의 끈기에 존경을 표하고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라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어린시절 나였다면’ AI가 바꾼 만학도의 졸업사진.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늘푸름학교는 2016년 개교 이후 지금까지 초등·중학 과정을 통해 300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고등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 진학에도 성공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늘푸름학교는 글자를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장 체험과 디지털 교육 등을 통해 어르신들이 사회와 계속 연결되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진호 기자ji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