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있는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문화체육관광부는 3층 누각 처마에 있는 한자 현판은 유지하되 한 층 아래 누각 처마(점선)에 한글 현판을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문화유산계에서 20년 넘게 뜨거운 감자였던 ‘광화문 현판’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일 국무회의에서 한글 현판 추가 설치 검토 방안을 보고했기 때문이다. 현 한자 현판은 그대로 두고, 아래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자는 제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이 한자 현판만 보고 우리 역사를 오해한다”는 찬성 의견과 “문화유산의 원형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조선의 정문 vs 대한민국 정문
한글 현판 추가에 가장 반색하는 건 한글단체들이다. 한글학회 등 75개 단체로 구성된 ‘광화문 훈민정음체 현판 설치 국민 모임’은 “한국 문화의 발신지인 광화문 현판이 한자로 돼 있어 우리의 정체성이 온전히 표현되지 못했으나 오랜 염원이 풀리게 됐다”며 환영했다.
광고 로드중
전 교수는 “전통 건축에 현판이 반드시 1개인 것도 아니다”고도 했다. 실제로 전통 건축물에 현판이 2개 이상 걸린 경우들이 없지 않다. 밀양 영남루와 창경궁 통명전, 덕수궁 석어당 등이다. 다만 이는 모두 한자 현판이다.
반면 광화문에 현판을 추가하면 문화유산의 원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거세다. 한 대학의 사학과 교수는 “한글 현판은 유네스코도 강조하는 ‘원형 보존’ ‘진정성 추구’ 원칙에 어긋난다”며 “통명전과 석어당은 현판이 건물 안팎에 하나씩 달려 있고, 정면에 같은 이름의 다른 현판이 2개 이상 달린 사례는 북한 평양의 대동문뿐”이라고 했다. 밀양 영남루 역시 현판 좌우로 이를 수식하는 ‘강좌웅부(江左雄府)’와 ‘교남명루(嶠南名樓)’를 건 것이라 한글 현판 추가와는 맥락이 다르다.
최 장관이 언급한 ‘중국 자금성’도 직접 비교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금성의 일부 전각과 대문은 하나의 현판 안에 한자와 한족을 지배한 만주족의 만주문자가 나란히 적혀 있다.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우리에게 한자는 우리 문화의 일부”라며 “한글 현판은 지금부터 새로 짓는 건물에 달면 된다”고 했다.
● “문화유산, 정치적 이용 말아야”
광고 로드중
지금의 한자 현판 교체에 물꼬를 튼 건 2005년 1월 유홍준 문화재청장(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다. 당시 ‘원형 복원’을 내세웠지만, 불과 몇 개월 남지 않은 8·15 광복절에 맞춰 조선 정조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현판으로 교체하려다 비난 받았다.
졸속 추진이 부실 고증을 낳기도 했다. 2005년 문화재청은 실제와는 반대로 밝은 바탕에 어두운 글씨로 만든 현판 글씨체를 공개했다. 그 결과 2010년 색이 뒤집힌 한자 현판을 거는 패착으로 이어졌다. 2023년 내건 새 현판은 2024년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한글로 바꾸자”는 주장을 냈지만,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이 반대했다.
하상복 목포대 정치언론학전공 교수는 “광화문과 그 앞 공간이 지니는 상징적 무게가 현판 문제를 반복적으로 끌어올리며 오래 묵은 정치 갈등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고 했다. 한 고고학자는 “한글이냐 한자냐는 순수히 문화적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문화유산을 정치 목적으로 이용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