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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칼럼]TV를 버린 소니의 큰 그림

입력 | 2026-01-27 23:15:00

한때 세계 TV시장 호령했지만 TCL에 넘겨
수익성 하락 가능성 큰 사업 정리하는 전략
신사업 개척에 열심, 디지털콘텐츠 성과 내
‘안주하면 도태’ 목격한 日기업의 진화 노력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1월 20일 일본 기업 소니가 TV 사업 부문을 분리해 중국 기업 TCL과 합병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합병회사 지분의 51%는 TCL이, 49%는 소니가 갖게 된다. 경영권이 중국 측에 넘어가는 구조라 시장은 이를 사실상의 사업 매각으로 받아들였다. 관련 기사에 많은 일본인들이 아쉽다는 댓글을 달았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1990년대, 소니 TV는 늘 가전 매장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TV 브랜드 중 가장 비쌌다. 2010년에 안식년을 얻어 미국의 한 대학에서 1년간 가르치게 됐는데, 가전 매장에 갔더니 매장 중앙에 LG와 삼성 TV가 있었다. 상전벽해란 게 이런 건가? 당시 소니 TV는 한국 제품에 밀려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2004년부터 시작된 적자가 매년 누적되고 있었지만, 소니의 경영진은 소니 TV가 한국 제품에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소니가 TV 사업에 칼을 댄 건 2012년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가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의 일이다. 소니를 차라리 애플에 매각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던 때, 소니의 개혁을 지휘하게 된 히라이는 TV 부문에서 프리미엄 라인만 남기고 나머지 사업 모두를 정리했다. 소니의 상징과도 같던 TV 부문의 구조조정이라 사내외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결단 덕분에 소니 TV는 2014년에 10년 연속 적자를 끝내고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프리미엄 라인에서도 시장 점유율과 영업이익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제품에까지 시장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던 일본 기업 중 이제는 시장에서 사라졌거나 외국에 매각된 기업이 적지 않다. 살아남은 기업은 최근 상당히 좋은 실적을 내고 있지만, 또 언제 위기에 봉착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대단하다. 그래서 흑자를 내는 부문도 영업이익률이 떨어지거나 가까운 미래에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정리하고, 그 돈으로 신사업에 투자한다. 소니가 TV 부문을 매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TV를 버린 소니는 신사업 개척에 열심이다. 자동차 제조사 혼다와 함께 자회사를 만들어 자율주행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혼다의 자동차 제조 능력, 소니의 로봇 기술, 그리고 소니의 디지털 콘텐츠를 결합해 자동차를 달리는 엔터테인먼트 박스로 만들 야심이다. 최근 소니의 사업 부문별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35.2%)을 차지하는 것은 게임과 네트워크 서비스다. 여기에 음악과 영화를 합하면 디지털 콘텐츠 중심의 사업 비중이 60.5%나 된다.

소니는 게임 네트워크 사업을 발전시켜 메타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사업도 개척하고 있다. 그 첫 단계로 최근 ‘Favorite Space’라는 앱을 개발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시티의 홈 경기장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각 선수의 몸을 29개 부분으로 나누어 그 움직임을 쫓아간다. 그러고는 그 앱을 통해 경기 하이라이트를 관중의 시점이 아니라 선수의 시점에서 볼 수 있게 한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고, 유럽의 다른 팀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로봇, 카메라, 화상 등에 강한 기술력을 살려 우주 사업에도 도전하고 있다. 2023년에는 소니 카메라를 탑재한 초소형 인공위성 ‘EYE’를 지구 궤도에 투입했고, 2024년에는 소니가 제작에 참여한 탐사 로봇 ‘SORA-Q’가 달 탐사에 성공했다. 지상에 있는 사람이 EYE를 이용해 지구나 우주의 영상을 찍을 수 있는 ‘Star Sphere’라는 앱도 개발했다. 이 앱을 이용한 사업을 시작했다가 문제가 있어 지금은 서비스 운용을 중단한 상태다. 다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사업성이 있을까? 아직 예단할 수 없지만 자율주행차, 메타버스, 우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는 소니의 진화가 소니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과거 많은 일본 기업이 1970, 80년대의 성공신화에 매몰돼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도 진화를 거부하다가 도태됐다. 도태 위기에 몰렸던 소니는 그래서 지금도 진화를 위한 긴장을 놓지 않고 있다. 소니의 경험은 한국 기업에도 진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라는 경고를 던지는 것으로 보인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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