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부를 일군 직업 화가들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의 46세 자화상(1623년). 사진 출처 Royal Collection Trust
요즘 많이 보이는 콘텐츠인 자산 규모나 부자 순위를 매기는 글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대상이 철학자였다.
광고 로드중
그러나 그들 역시 먹고살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철학자들의 삶을 이들이 처한 경제적 조건 속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도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현대 분석철학의 거장 비트겐슈타인은 금수저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철강 재벌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거의 조 단위에 이르는 재산을 상속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는 철학적 사유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대부분을 기부했다. 이후 그는 초등학교 교사, 정원사와 같은 직업을 전전하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
광고 로드중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부자였던 루벤스가 머물던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저택 ‘루벤스 하우스(Rubenshuis)’. 사진 출처 루벤스 하우스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왕족이나 귀족 출신 화가는 제외하고, 작품 활동을 통해 부를 모은 직업 화가로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송나라의 8대 황제 휘종은 회화 실력이 탁월했는데, 그의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 미술사에서 빠짐없이 언급된다. 실제 작품을 보면 우아한 표현력이나 치밀한 완성도에서 당대의 직업 화가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회화사적으로 중요하더라도, 그가 얻은 부는 그림을 통해 축적된 것이 아니기에 부자 화가 순위를 매길 때는 제외해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고려의 공민왕은 왕비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직접 그릴 정도로 뛰어난 필력을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공민왕 역시 그림으로 부를 이룬 것이 아니기에 이번 순위에서는 뺐다.
이렇게 직업 화가들만을 놓고 보면, 현대 이전의 화가들 가운데 명확히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루벤스(1577∼1640)다. 루벤스는 오늘날의 벨기에 안트베르펜 출신이지만, 유럽 전체를 무대로 활동한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당시 유럽의 왕족과 귀족 상당수가 그의 고객이었다. 그 결과 루벤스는 명성에 걸맞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광고 로드중
기록에 따르면 루벤스의 연간 소득 역시 귀족에 필적했다. 당시 귀족들의 연수입이 대략 6000∼1만4000길더로 알려져 있는데, 루벤스는 그림 판매만으로 연간 3만 길더 이상을 벌어들였다. 여기에 골동품 거래 등 부수입까지 더해지면서 그는 귀족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화가였다. 게다가 그는 영국과 스페인의 외교 갈등을 조율한 공로로 두 나라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이는 그가 직업 화가를 넘어선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루벤스 하면 따라붙는 ‘화가들의 왕이자 왕들의 화가’라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 화가 가운데 가장 큰 부를 일군 인물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다. 바로 피카소(1881∼1973)다.
피카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 말라가라는 작은 마을에서 미술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0대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가난한 유학생으로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91세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가 남긴 재산의 규모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의 유작은 회화, 조각, 드로잉, 판화를 합쳐 약 4만5000점에 이르렀고, 프랑스 남부에만 성 두 채를 포함해 여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현금과 금, 유가증권까지 포함한 그의 재산은 당시 가치로 약 1억∼2억5000만 달러, 오늘날 가치로 1조∼2조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사실 돈은 피카소에게 일찍부터 큰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그가 프랑스 남부에 집을 한 채 살 때, 그가 지불한 대금은 정물화 한 점이었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그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화가였다. 다행히 그는 돈에 매몰되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창조력을 불태웠다는 점에서 존경받을 만하다.
가장 부유한 현존 작가로 알려진 데이미언 허스트. 사진 출처 허스트 인스타그램
그는 생과 사, 죽음과 욕망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동시에 그 작업들이 치밀한 상업 전략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의심도 함께 받아왔다. 화가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허스트의 경우 그가 얻은 부가 예술성의 부산물이 아니라, 작업 방식 자체와 깊이 결합돼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파격성이 예술이 아닌 돈벌이를 위한 전략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백금, 다이아몬드로 만든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년). 사진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허스트는 60대 초반이다. 그의 경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지는 여전히 열려 있다. 공교롭게도 그가 3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를 통해 허스트가 자신을 둘러싼 오해, 즉 그가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세속화된 작가라는 오명을 벗고 현대미술의 철학적 가치를 새롭게 입증할 수 있을까. 이는 중요하게 지켜볼 관전 포인트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