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페르메이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제공
연초가 되면 주요 미술관들은 예정 전시를 발표하기에 바쁩니다.
올해에도 라파엘로(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세잔(스위스 바이엘러재단 미술관), 마티스(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프리다 칼로(영국 테이트모던) 등 유명 작가들의 전시가 관객을 기다리는 가운데, 아시아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소식은 의외의 곳에서 있었습니다.
그 소식은 바로 일본의 미술관에서 여름에 예정된 전시 이야기입니다. 이 전시는 심지어 도쿄도 아닌 오사카에 있는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열리며, 약 한 달간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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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인 미인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페르메이르가 33세인 1665년경에 그린 인물화입니다.어두운 배경 앞에 선 여자가 고개를 돌려 관객을 바라보고 있고, 푸른빛의 터번을 쓰고 있으며 커다란 진주 귀걸이를 끼고 있죠. 높이 45cm, 폭 39cm의 작은 그림으로 내용도 단순하지만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림 속 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우선 이 그림을 그린 페르메이르 역시 알려진 바가 많지 않고, 그의 것으로 확실하게 확인된 작품도 36점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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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1995년 미국 워싱턴DC 내셔널갤러리에서 페르메이르 회고전이 열리고, 이 때 미국 관객들에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후 1999년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이 작품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같은 제목의 소설을 쓰고, 2003년 콜린 퍼스,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이 그림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에 이릅니다.
그림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연구도 이뤄졌습니다. 원래는 배경에 녹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거나, 그림의 안료로 천연 광물인 라피스 라즐리로 만든 고급 물감인 ‘울트라마린’이 쓰였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고 정설은 아니지만 그림 속 여자가 초상화를 의뢰한 후원자의 딸일 수도 있다는 가설도 제기됐죠.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상상 속의 인물을 그려낸 ‘트로니’라는 이야기가 더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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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장면
그런데 이 모든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뽀얗고 커다란 귀걸이를 달고, 울트라 마린색의 천을 두른 채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만큼 이 작품을 뚜렷하게 사람들에게 각인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작품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이야기도 짓고 영화도 만들도록 상상의 나래를 열어주어서 다양한 이야기의 소재가 된 셈입니다.
14년 만에 아시아 방문
그림 속 사람이 누구이고 왜 그렸는지 등 그림에 관한 사실과 정보가 아니라 분위기와 이미지가 엄청난 파급력을 자아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이 작품은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되고 있고, 대표 작품이기 때문에 외부로 반출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2023년 암스테르담 라익스미술관에서 페르메이르 회고전이 열릴 때 잠시 마우리츠하위스를 떠난 적이 있지만, 이것은 네덜란드 국경 안에서의 이동이었죠.
이번에 14년 만에 다시 아시아를 찾는데, 또 일본인 이유는 지난 전시가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과 미국을 돌며 전시했는데, 일본에서는 도쿄도립미술관, 고베시립미술관에 이어 미국 샌프란시스코, 애틀란타, 뉴욕으로 2년 간 투어를 다녔습니다. 이때 전체 전시 관람객이 220만 명에 달했습니다. 여기서 일본 도쿄와 고베에서만 약 120만 명이 방문했죠.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당시 문을 닫고 전면 확장, 리모델링에 나섰습니다. 대표 작품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세계 순회전으로 보낸 덕분에, 전시 수익으로 확장 리모델링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네덜란드 밖에서 전시가 가능했던 이유도 미술관이 일부 전시관을 닫고 리모델링을 진행한 덕분입니다. 때문에 전시 기간이 8~9월로 다소 짧습니다.
즉 일본인의 유별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대한 사랑 덕분에 이런 이례적인 전시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측은 “매년 수천 명의 일본인 관객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며 미술관을 찾는다”며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외에 렘브란트를 비롯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 회화도 전시될 예정이나, 자세한 구성은 2월 말 발표 예정입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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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