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희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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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밤 서울 시내버스 노사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틀간 이어진 역대 최장 파업이 마침표를 찍으면서 15일 오전 4시 첫차부터 버스는 다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도시는 평안을 되찾았지만, 체감온도 영하 14도의 한파에 정류장을 지켜야 했던 시민의 기억까지 지워진 건 아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이동 안전망이 멈췄을 때 그 고통이 누구에게 집중되는지 여실히 보여 줬다.
파업 첫날 청소 근로자 김모 씨(64)가 정류장에서 가슴을 졸인 건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4시 6분이면 오던 첫차가 나타나지 않았고, 뒤늦게 동료를 통해 파업 소식을 접했다. 김 씨는 그날 일당 대부분을 털어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서울 시내버스는 지하철과 달리 파업 시 ‘필수 운행’ 규정이 없다. 7018대가 한 번에 멈춰서도 제재할 수 없다. 그런데 이 혼란 속에서도 기어이 시동을 건 478대(6.8%)의 버스가 있었다. 운전사들은 자발적으로 정복을 입은 채 요금 단말기를 끄고 승객을 실어 날랐다. 이들이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궁금했다. 수소문 끝에 한 명과 연락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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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어르신들의 고립을 우려했다. 젊은 사람은 애플리케이션으로 우회 경로를 찾거나 택시라도 부르지만,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단골 승객은 그러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파업 기간 임 씨의 버스에 오른 첫차 승객 대부분은 고령층이었다고 한다.
물론 동료 운전사 대다수가 파업에 참여한 상황에서 차고지를 나서기는 쉽지 않았다. “동료와 마주치면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미안했죠. 저도 파업에 반대하는 건 결코 아니거든요.” 그러나 ‘부모님 같은 분들이 정류장에서 마냥 기다리실 게 뻔한데’라는 걱정이 발걸음을 떼게 했다.
이번 파업을 둘러싼 노사의 입장 차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실질임금을 높여 달라는 노조의 요구는 근로자로선 당연한 주장이다. 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는 사측과 버스회사 적자 보전에 매년 4500억 원 안팎을 쓰는 서울시의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누가 옳든, 새벽 첫차에 생계를 걸어야 하는 이들이 볼모가 되는 현실은 이제 멈춰야 한다. 노조의 단체행동권 못잖게 첫차 근로자의 이동권도 소중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바로 일선 운전사들이다. 버스 노사는 통상임금 산입 범위를 두고 또 한번 충돌을 예고했다. 그전에 필수 운행 제도를 논의하면 어떨까. 버스 의존도가 높은 지역과 시간대만이라도 말이다. 그건 노조의 파업권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밥벌이하는 사람끼리의 연대’를 지킬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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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 사회부 차장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