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운영 현장, 인력-물량 그대로 “주중 이틀은 7시 출근 밤 10시 퇴근” 본격 도입 앞서 대체인력 등 보완 필요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작업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택배 박스를 나르고 있다. ⓒ News1 DB
박 씨는 “쉬는 날이 생겨도 물량은 그대로라 오히려 더 피곤하다”며 “대리점 기사 절반 정도는 아내 등 가족을 동원해 업무를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변에는 주 5일제가 정착되면 택배 일을 그만두겠다는 기사들도 많다고 한다.
‘실근로시간 단축’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택배업계가 잇달아 주 5일제 도입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은 준비가 안 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치권이 택배업계 주 5일제 정착을 넘어 새벽배송 제한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대체 인력 확보 등 보완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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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택배업체 CJ대한통운은 올해 상반기(1~6월) 주 5일제를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중형 이상 대리점을 대상으로 주 5일제를 시작했고, 올 들어선 20인 이상 대리점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쿠팡과 컬리 등도 최근 배송기사 주 5일제 도입 가능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준비가 미흡한 상태로 주 5일제가 시작되면서 택배기사들의 어려움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권의 택배 대리점 소장 김모 씨는 “배송 지역이 워낙 넓고 물량이 많아 주 5일제가 물리적으로 힘들다”며 “지금도 노조에 가입한 기사만 주 5일 근무를 하고 나머지 기사들이 주 6일을 일하며 물량을 소화한다”고 했다. 경기 지역의 또 다른 택배 대리점 소장 김모 씨는 “현장은 준비가 안 돼 있는데 본사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주 5일제 도입에도 ‘주 7일 배송’이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는 데다 고정 택배 물량은 그대로여서 실제 근로시간 단축 효과는 미미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경기 남양주시의 택배기사 이모 씨(46)는 “지금 여건에서 주 5일제가 정착되면 퇴근시간만 2, 3시간 늦어지는 꼴”이라며 “본사에 항의하겠다는 기사들이 꽤 있다”고 했다.
● “대체 인력 확보할 지원 방안 우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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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주도하는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는 택배업계 주 5일제 정착에 이어 심야시간 배송 제한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회의에서는 택배기사 야간노동을 월 12회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주 5일제 도입 등이 실질적인 근로시간 단축으로 이어지려면 제도 보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체 인력을 안정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수입을 보장하거나 일당을 보전하는 등 지원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며 “대리점 수수료 조정이나 인건비 보전 없이 주 5일제를 도입하면 현장에 부담만 전가되는 ‘선심성 제도’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