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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과 함께 지키겠다” 처절한 반성 담긴 북한산성을 걷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입력 | 2026-01-10 01:40:00

[북한산성 13성문 종주]



노을에 물든 원효봉 북한산성 성곽에서 바라본 삼각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들.


북한산은 원래 삼각산이라고 불렸다. 최고봉인 백운대를 비롯해 인수봉 만경봉이 깎아지른듯 우뚝 서서 삼각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던 김상헌이 읊은 시에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본격적으로 불리게 된 건 1711년(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짓게 되면서부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왜 북한산성을 지었을까. 새해 첫 산행으로 북한산성 13성문 일주에 도전했다.

● ‘명산 챌린지’ 등 인증 명소

북한산 의상봉 용출봉 증취봉 나한봉 문수봉을 지나 백운대 입구까지. 다시 원효봉을 거쳐 북한산성으로 원점 회귀. 장장 9시간 동안 총 16.7km 성곽길의 13성문을 종주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쉽지 않았지만 심기일전하기엔 좋은 기회였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내린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가장 먼저 도달한 성문은 대서문(大西門). 북한산성 정문 역할을 하는 문이다. 숙종도 1712년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문으로 들어가 중성문을 거쳐 행궁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한봉에서 바라본 북한산성.

북한산성에는 이같은 대문(大門) 6개와 작은 암문(暗門) 7개, 수문 2개가 있다. 대문인 대남문 대동문 대성문 대서문 북문 중성문은 홍예(아치형) 구조로 기와지붕 문루(門樓)를 갖춘 당당한 모습이다.

반면 암문은 네모난 작은 문이다. 보국문 가사동암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용암문 백운봉암문 서암문이 있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구원병의 비상 출입구다. 고갯마루나 능선 성벽 밑에 숨어 있어 적군이 알아차리기 힘들다.

문수사 문수동굴.

북한산성 13성문 종주는 인증 명소로도 유명하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챌린지’ ‘11템플투어’ ‘12봉우리 챌린지’를 비롯한 20여 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성문에 도착할 때마다,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사찰에 들를 때마다 휴대전화로 GPS 좌표를 기록하고 인증샷을 찍으며 부지런히 산행을 한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산행길이다. 쇠줄을 잡고 암벽을 오르기도 하고, 산꼭대기까지 굽이굽이 뱀처럼 이어지는 성곽길을 걸으며 북한산성을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

나한봉 치성.

나한봉에 있는 치성(雉城·성 위에 낮게 쌓은 담)에 올라서면 서울 아파트 단지들은 물론 한강, 여의도, 김포, 인천, 파주와 북한까지 파노라마처럼 전망이 펼쳐진다.

북한산성은 천혜의 화강암 봉우리를 성벽으로 연결한 천연의 요새다. 해발 100m의 낮은 계곡부터 760m 능선부까지 성벽이 서 있다. 낮은 곳에는 높게 쌓은 반면, 높은 봉우리 주변엔 성벽없이 여장(女墻·성가퀴)만 세운 곳도 많다. 경비 초소인 성랑(城廊) 유적도 143곳이 남아 있다.

경복궁에서 탕춘대성을 거쳐 최단 코스로 북한산성으로 연결되는 대남문.

정오쯤 대남문(大南門)에 도착했다. 비봉능선으로 탕춘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었다.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온 등산객들을 만났다. 동남아에서는 겪어 보지 못했을 추위를 뚫고 올라온 게 대단했다.

“말레이시아에도 높은 산이 있나요?”

“물론이죠. 해발 4000m가 넘는 키나발루산이요.”

말레이시아 관광객들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들에게 김밥을 맛보라고 권하자 무척 즐거워했다. 외국인 등산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국에서 꼭 해 보라고 하는 것 중 하나가 산에서 한국인 등산객이 인심 좋게 나눠 주는 음식을 먹는 체험이라고 한다.

대성문에서 보국문으로 가는 성벽 길에서 미국인 카를로스 씨를 만났다. 주한미군으로 경기 동두천에서 복무하는 그는 설악산 같은 한국 명산을 자주 올랐다. 그는 “다음 달 고향 콜로라도로 돌아가기 전에 한라산 등반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용암문 앞에서 만난 러시아 남성 2명은 “러시아인에게 이 정도 추위는 문제없다”며 “백운대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추운 평일 북한산.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보였다. 이른바 ‘K등산’이 서울 대표 관광상품이 된 현장이다. 알프스도 아닌데 서울에서 산을 9시간 넘게 탈 수 있다니. 그것도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명산이 지척에 있다는 건 세계 어느 대도시에서도 만날 수 없는 축복이다.

● 북한산성을 지은 까닭은

북한산성은 처절한 반성이 담긴 성이다. 임진왜란 때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떠나고,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가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맞았다. 비참한 역사를 다시는 겪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지은 성이다.

1636년 12월 2일 청 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병자호란이다.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7년 전 정묘호란 때처럼 강화도로 가려 했다. 그러나 청군 선발대가 한발 앞서 양화진에서 길을 차단해 강화도 피난길이 막혀 버렸다. 그달 14일 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16일 청은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남한산성에 갇힌 왕과 관료, 군사 1만2000명과 백성들에겐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비축 물자가 없었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 인조는 이듬해 1월 1일 행궁 뜰에 나와 명나라 황제를 향해 새해 인사 예식을 올린다. 인근 망월봉에서 이 예식을 내려다보던 청 태종은 신무기 홍이포를 쏘도록 해 산성을 혼란에 빠트린다. 인조는 혹한에 47일 동안 버티다 1월 30일 송파강 삼전나루로 나가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항복한다.

임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강화도와 남한산성은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남한산성은 들판에 고립돼 있어 적에게 포위당하면 구원병은커녕 식량 보급도 어려웠다. 강화도는 해전에 익숙한 왜적에겐 난공불락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남한산성은 한강을 건너야 하고, 강화도는 바다를 건너야 했다. 왕실과 관료는 배를 탈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는 백성은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그래서 북한산성을 쌓아야 한다는 논의가 벌어졌다. 북한산은 산세가 험하고 높아 포위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잇점이었다. 말 그대로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1만 사람이 열지 못하는 지형’이다.

실제로 종주를 하다 보면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동문을 지나 백운대와 인수봉 가까이 오면 깎아지른 화강암 절벽인 삼각산의 위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넓은 북한산성은 수백만 병사도 포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암문으로 구원병과 보급품이 들어올 수 있어 고립 작전도 불가능하다.

북한산성에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과 부대 주둔지, 사찰과 간선도로 등이 조성됐다. 산성에 필수적인 물을 공급하는 연못과 우물도 100곳 넘게 만들어졌다.

숙종이 북한산성 축조를 결심하면서 했다는 ‘남한산과 강화도와 달리 북한산은 지극히 가까운 까닭으로, 백성과 함께 들어가 지키고자 한다(欲與民共守)’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전란 때마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 승병들이 6개월 만에 축성

북한산성은 1711년 4월 3일부터 10월 19일까지 6개월 만에 지어졌다. 험준한 산속에 길이 11.6km, 내부 면적 5.3㎢ 나 되는 산성을 짓는 데 어떻게 여섯 달 밖에 안 걸렸을까. 조선 왕실은 임진, 병자 양란 때 맹활약한 승병들을 동원했다. 특히 높은 봉우리들을 성벽으로 연결하면 됐기 때문에 작업이 빨랐다. 축성 이후 승병들은 북한산성 수비까지 담당했다.

이를 위해 성내 요충지에 승영사찰(僧營寺刹) 13곳이 건립됐다.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병영 역할의 절이다. 승병대장 팔도도총섭이 머무는 중흥사를 중심으로 태고사 노적사 서암사 경흥사 국녕사 부왕사 진광사 보국사 용암사 등이 세워졌다.

그래서일까. 험준한 산꼭대기에서까지 절을 만날 수 있다. 의상봉 아래쪽, 원효봉을 마주 보는 자리의 국녕사(國寧寺)가 대표적이다. 대불(大佛)을 모신 86칸 규모 국녕사는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 성벽과 가사당암문 수비를 맡았다.

당시 팔도도총섭 자격으로 북한산성 승군을 지휘한 인물은 화엄사 승려 성능(聖能)이었다. 성능은 30여 년을 한양 방위에 힘쓰다 영조 21년 ‘북한지(北漢誌)’를 저술한 뒤 화엄사로 돌아갔다.

북한산성 승병은 350명. 팔도 사찰에서 차출돼 온 이들은 2개월씩 근무했다. 남한산성을 지키던 승병까지 합치면 700명에 이르렀다. 유교국가인 조선이 국가 핵심 시설인 산성 수비를 승려에게 맡겼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오후 3시쯤 백운대 바로 아래 백운동암문에 도착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산을 내려갔다. 북문을 지나 마지막 코스 원효봉을 올랐다. 뉘엿뉘엿 지는 노을. 원효봉에서 바라본 서울의 해 지는 풍경은 최고였다. 우뚝 솟은 삼각산을 가로지르는 북한산성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맛집추운 날 산행 후에는 따뜻한 음식이 그립다.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부근 시장 골목에 있는 ‘원조 두꺼비집 불오징어’는 50년 전통의 오삼불고기 맛집이다. 철판에 통통한 오징어와 쑥갓, 대파, 양배추가 산처럼 쌓여 나온다. 은은하게 퍼지는 쑥갓 향과 양념 맛이 어우러진 불오징어는 감칠맛이 느껴진다. 하이라이트는 볶음밥이다. 오징어를 몇 점 남긴 철판에 밥을 붓고 매콤한 양념과 비벼 먹는다.

글·사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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