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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150년, 조선처럼 또 당해선 안 된다 [오늘과 내일/박용]

입력 | 2026-01-01 23:18:00

박용 논설위원


해외에서 “글자 K를 한국인이 훔쳐갔다” “모든 멋진 것에 K가 붙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한국(Korea)을 상징하는 K-바람이 뜨겁다. 미국 CNN이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을 소개하는 다큐 ‘K-에브리싱’을 새해에 내보내기로 한 것은 세계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150년 전 일본인들이 군함을 끌고 와 강화도 조약을 강요하며 조선을 강제 개항했을 때,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제 개항 한일의 엇갈린 길

오랜 쇄국으로 변화와 위기에 둔감했던 조선은 끓는 물에 서서히 익어버린 냄비 속 개구리와 같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최근 공개한 구한말 인천항 영상에는 흰옷을 입고 지게를 진 부두 노동자 사이에 일본인이 등장한다. 일본인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로 개항장에 상주하며 일본 돈을 쓰고 한국인까지 고용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조선은 부산을 시작으로 인천, 원산의 개항을 약속했지만 관세조차 규정하지 못할 만큼 근대 교역에 어두웠다. 치외법권과 무관세 특혜의 날개를 단 일본 상인이 득세하는 동안 조선은 현대적 군사력의 토대인 기술 혁신과 산업 자본 축적 기회를 잃었다.

강화도 조약 22년 전 일본도 흑선을 이끌고 온 미국 매슈 페리 제독의 ‘군함 외교’에 똑같이 당했다. 1854년 강제 개항 후 일본의 대응은 조선과 달랐다. 14년 뒤 메이지 유신으로 천황 중심의 개혁 구심점을 만들더니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을 시작으로 세계로 나가 선진 제도를 무섭게 배웠다. 영국에서 입헌 군주 제도, 해군과 조선, 중앙은행과 철도 기술을, 미국에서 근대 농업과 개발 정책 및 공교육 제도를 습득했다. 후발 산업국 독일의 국가 주도 산업 발전 모델을 받아들여 자본과 기술을 축적한 일본은 현대식 군대를 키웠다. 강제 개항 40년 뒤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다시 10년 후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이겼다. 개항 반세기 만에 서구 열강도 어쩌지 못하는 무서운 나라가 됐다.

6·25전쟁의 폐허 위에 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다시 디자인한 한국은 더 이상 일제 앞에 무기력했던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1인당 소득은 이미 일본을 넘어섰다.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인 GFP는 한국 군사력을 세계 145개국 중 일본(8위)보다 높은 5위로 평가했다. 동시에 경고등도 켜졌다. 한국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는 ‘피크 코리아’설이 일본 언론 등에서 등장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든 경제 모델이 개혁 동력을 잃고 있고, 줄어든 인구는 빠르게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원화 가치 추락을 달러 수요 공급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최근 “붕괴 직전(Almost collapsed)”이라는 제목을 쓰며 잘나가던 한국 영화 산업 위기와 K팝 등 콘텐츠 산업에 미칠 영향을 다뤘다.

150년 전 실패 경험에 위기 해법 있어

미국과 패권 경쟁을 하는 중국이 대만해협 긴장을 고조시키고, 일본 지도층에서 핵무장론까지 나올 정도로 한반도 주변 정세도 심상치 않다. 북핵 위기가 고조됐던 2017년 만난 유엔 외교관은 “구한말처럼 러시아가 남진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됐지만 개혁할 것인지 개혁당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다시 놓였다. 박차고 뛰쳐 나가야 끓는 냄비 속 개구리의 비극을 피한다.

150년 전 실패 경험에 위기 해법도 있다. 편 가르기 정쟁을 막고 변화와 위기 대응에 국력을 결집하게 하는 정치 개혁, 제조업 강점을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과 접목하는 산업 대개조, 부동산에 집중된 자금을 혁신 산업으로 돌리는 생산적 금융, 수도권 편중과 지방 소멸을 막는 국토 전략과 같은 개혁 과제를 한시도 미룰 수 없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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