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수백조 들여 용인 클러스터 조성중 李대통령 “재생에너지 풍부한 남쪽 관심을” 환경장관 “균형발전 도움 되는 지혜 모아야” 신공장 지연땐 해외 경쟁사에 ‘타이밍’ 뺏겨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시 처인구에 짓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2027년 1기 팹(공장)을 준공하는 게 목표다. 삼성전자 역시 내년에 인근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착공할 예정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이들 반도체 공장의 지방 이전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용인=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삼성·SK 본격 속도내는데…李 “균형발전”
반도체 지방이전론은 최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발언으로 크게 확산됐다. 김 장관은 28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에너지 고속도로’를 확충해 산단(산업단지)으로 전기를 보내는 방식이 마치 산업화 상징인 경부고속도로를 연상시켜 지방 사람들의 걱정이 많다”며 “어떻게 하는 게 국가 균형 발전과 기업에 도움이 될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26일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경기)용인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전기가 많은 그쪽으로 옮겨야 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밝힌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삼성, SK가 각각 수백조 원을 들여 조성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최근 인공지능(AI)발 수퍼사이클을 맞아 본격 속도가 붙기 시작한 상태다. SK하이닉스 클러스터는 계획한 총 4개 팹(공장) 중 1개 팹의 공사가 상당부분 진척돼 2027년 가동을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 클러스터는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산단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해 22일부터 토지 소유자들과의 보상 협의를 시작했다. 내년 착공한 뒤 2030년 첫 가동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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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운명 걸린 반도체, 정책 신뢰 깨져”
이재명 정부의 이같은 갑작스러운 ‘지방이전론’에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발표됐고, 삼성전자의 경우 전 정부인 2023년 계획을 수립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지방 이전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반도체 클러스터는 국가와 기업간 신뢰의 문제”라며 “반도체는 국가 운명이 걸린 산업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년 6월 열리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의식해 표심 공략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업계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여유롭게 공장 부지를 고를 상황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데는 주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협력 체계를 비롯해 생활권을 형성한 우수 인재 등 그동안 축적한 생태계와의 연계가 중요하다. 반도체 인프라를 지방에 옮기는 것이 정치권의 말처럼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에서 주장하는 전력 확보 역시 호남의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면 전력 공급이 불규칙해지는 ‘간헐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지방에 옮기려면 최소 10년 이상은 필요한 프로젝트”라며 “또 옮기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필요한 투자를 못하게 되는 기회비용도 발생하는데 이는 큰 리스크”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논란에 이상일 용인시장은 28일 구윤철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삼성·SK 클러스터에 대한 차질 없는 지원을 요청했다.
●美中日에 추격 당하는 韓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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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해외 국가들은 한국 반도체를 따라잡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중국 정부는 반도체 자립을 가속화하기 위해 최대 5000억 위안(약 102조 원) 규모의 신규 보조금 패키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확정되면 미국 반도체법 인센티브인 527억 달러(약 75조5000억 원)를 웃도는 단일국가 최대 규모의 지원사업이 된다.
‘반도체 부활’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도 지난달 자국 반도체 연합체인 ‘라피더스’에 1조1800억 엔(약 11조 원)을 추가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투입하기로 한 1조7000억 엔에 더해 지원금이 거의 2배(70% 증가)로 불어난 것이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