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구 대표의 아쉬움과 희망
김성구 샘터 대표
씁쓸하면서도 묵직한 미소란 이런 걸까. 22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김성구 ‘샘터’ 대표(65)의 표정이 도통 가늠이 되질 않았다. 1970년 4월 창간해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월간 교양지였던 샘터. 56년 동안 발행되며 국내 최장수 타이틀을 지켰던 샘터가 내년 1월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 샘터사를 창립한 고(故)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아들인 김 대표는 가슴에 담아둔 게 참 많은 목소리였다.
● 피천득부터 한강까지 ‘문인들의 산실’
창간호+1월호 특별세트 표지 (샘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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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가 말하는, 반 세기 넘게 이어온 ‘샘터’의 정체성은 분명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 그는 이를 “3대 3대 3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전문 작가의 글 30%와 생활인이 직접 쓴 글 30%,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를 찾아가 기록한 글 30%. 김 대표는 “70세가 넘어 야학에서 글을 배운 할머니가 떠오른다”며 “몽당연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는데, 맞춤법은 많이 틀렸어도 한 줄도 버릴 수 없는 원고였다”고 회상했다.
“그런 분들이야말로 비범한 존재가 아닐까요. 그런 필자와 독자들이 ‘샘터’를 만들어온 겁니다.”
샘터는 자주 ‘작가의 산실’로도 불렸다. 정 시인과 정채봉 아동문학가가 샘터에서 일했다. 피천득과 최인호, 정채봉, 법정 스님, 장영희 교수 등이 샘터 지면을 거쳐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도 1990년대 중반 샘터 기자였다. 김 대표는 “한 작가의 ‘관찰력’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계단의 높이, 집 앞에 놓인 아이 신발, 그 배열까지 유심히 보면서 그 집의 삶을 읽어내는 식이었어요. 그런 디테일한 관찰력이 훗날 소설의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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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한 휴간에 들어가는 이유는 자명하다. 경영 악화. 김 대표는 “월간지를 유지하려면 최소 5만 부는 나가야 적자를 면한다”며 “최근 샘터의 발행 부수는 약 2만 부 수준”이라고 했다.
샘터는 2019년에도 휴간을 결정한 적이 있다. 당시 고(故) 장영희 교수 가족 등 수많은 독자들이 지원 의사를 밝혀 왔다. 이번에도 “후원하겠다”는 문의가 이어졌다고. 하지만 김 대표는 같은 길을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외부 지원에 기대 이어가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했어요. 단행본을 통해 스스로 힘을 기른 뒤, 다시 돌아오겠다는 선택이었죠.”
월간지는 휴간하지만 샘터 출판사는 계속된다. 잡지 기자들은 단행본 편집부로 자리를 옮겼다. 샘터동화상·생활수기상 등 독자 참여 프로그램도 유지한다. 새로운 필자 발굴 역시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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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