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용산 대통령실 대강당에서 열린 대통령실 6개월 성과 간담회에 참석한 김용범 정책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강훈식 비서실장(왼쪽부터).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만큼 소통을 중시한다는 의미겠으나 되레 걱정스럽다고 나는 다시 ‘청와대정부’는 반대다(1)에 썼다. 대통령 보좌기능에 그쳐야 할 대통령비서실이 자기네들끼리 너무나 소통을 잘한 나머지, 내각 꼭대기에 올라앉아 ‘청와대정부’로 군림한 문재인 정권을 따라할까 봐서다.
문 정권 때인 2018년 ‘청와대 정부’ 책을 낸 정치학자 박상훈은 “대통령중심제라고 대통령비서실이 대통령을 대신해 일하는 건 대통령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일”이라고 했다. 권위주의나 군주정에 가깝다는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문 정권 때 야당은 집권세력의 검찰총장 출신을 업어와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현재는 벼룩이 기어가는 재주라도 있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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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7일 임종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앞줄 오른쪽 두번째)이 강원 철원군 화살머리고지 일대를 찾아 남북 공동 유해발굴을 위한 비무장지대(DMZ) 지뢰 제거 작업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선글라스를 쓰고 손가락으로 무언가 가리키는 포즈가 인상적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대통령 발언을 귓등을 들었다(그게 권력의 본질이다). 비서실장 임종석은 대통령 해외 순방 중인 그해 10월 17일 청와대를 비운 채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 심지어 국방부 장차관까지 대동하고 선글라스 차림으로 요란하게 비무장지대(DMZ)를 시찰하는 겸손치 못한 태도로 욕 바가지를 먹었다.
민정수석 조국이 지극히 도덕적이지 못한 민낯을 드러내 정권 재창출 실패에 기여한 것은 세상이 다 안다(2018년 초엔 비서 신분으로 대통령 개헌안을 사흘에 걸쳐 국민 앞에 강의하는 오만방자함을 보였다). 뭐니 뭐니 해도 나쁜 부동산대책만 쏟아낸 청와대의 무능에 대해 쓰자면, 밤을 새도 모자란다. 국토부 장관 김현미는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했다가 ‘빵투아네트’ 소리나 들으며 억울한 척 장관직에서 하차해야 했다.
● 이재명 ‘청와대정부’는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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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새벽 참모장’ 김민석 국무총리가 10월 10일 오전 서울 구로구 도림로 새벽인력시장을 찾아 건설 일용근로자에게 격려물품 전달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문 정권은 책임총리, 민주당 정부를 강조했으나 청와대정부로 망했다는 점에서 비극이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2022년 ‘청와대정부를 혁파하라’는 대통령 성공조건 워킹페이퍼를 내놨다. 비서실에 크게 의존하는 통치는 대통령에게 권력을 더 집중시켜 ‘제왕적 대통령’ 문제를 낳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거다. 대통령비서실은 대통령 권위를 이용해 행정부·입법부·사법부 상위기관으로 기능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문재인 청와대정부가 그랬다. 유능했으면 또 모른다. 임대차법, 최저임금 급인상, 친중-친북정책 등 좌파 정책을 원없이 썼다가 다수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청와대를 제발로 떠난 윤석열 정권에는 ‘용산정부’ ‘여사정부’란 말도 아깝다. 하지만 이 대통령도 책임총리란 말 한마디 없이 ‘새벽 참모장’을 자처하는 총리를 앉혀 대통령실 중심 국정운영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위험 경고등이 울린다. 구중궁궐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과 3실장끼리 찐한 소통을 거듭하다간 삼권분립도 울고 갈 위헌적 삼선짬뽕을 만들 공산이 크다.
● 성공한 대통령 만들려면 럼스펠드처럼
1974년 백악관에서 제럴드 포드 당시 미국 대통령이 문서를 검토하고, 도널드 럼스펠드 비서실장(왼쪽)이 이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고 있다. 미국 포드 대통령 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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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실은 날카롭기는커녕 그 반대여서 더 무섭다. 12일 대통령은 세종시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강훈식에게 “훈식이 형, 땅 산 것 아니냐”고 (농담)했다. 다수 국민을 경악케 한 인사청탁 메시지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김현지 부속실장)한테 추천할게요”가 그들 사이에선 고작 웃고 넘기는 소재가 된 것도 억장 무너지는데 대통령도, 비서실장도, 내년 선거만 신경 쓰는 눈치니 통탄할 노릇이다.
● 유능하지도, 겸손하지도 못한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도중 옆에 앉은 강훈식 비서실장(오른쪽)이 이 대통령 쪽으로 몸을 기울여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똑똑한 강훈식은 대통령 말씀 사흘 뒤 열린 3실장 간담회에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정책적 준비는 다 돼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대통령은 대책 없다는데 대통령실이 정책적 준비를 해놨다는 것도 웃기지만(국토부는 놀고 있나), 그럼 왜 입때껏 대책을 안 내놓으면서 대통령을 욕먹게 만들고 국민은 욕보라는 건지, 웃기지도 않는다(지방선거 직전 내놓을 작정?)
문 정권 때도 3실장 간담회라는 청와대 홍보잔치를 했다. 비서는 입이 없어야 마땅하지만 그래도 정부 출범 2년 반이 지난 뒤 노영민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2년 반은 대전환의 시기였다”라고 자랑질을 했다. 이번 대통령실은 출범 6개월 성과로 민생경제 회복, 정상외교 정상화, 국민중심 국정 등 무려 세가지를 꼽았으니 지화자 태평성대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실이 이토록 겸손치 못한데도(유능과 도덕성은 아직 모른다) 국힘 대표 장동혁은 ‘도로 윤 어게인’이나 외치는 통에 지선 결과가 불 보듯 뻔하니 원통할 따름이다.
● 박정희 유산 ‘환관 통치’로 돌아갈 텐가
1971년 7월 1일 제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박정희 전 대통. 동아일보 DB
집권당까지 정책 결정에서 소외시키려고 비서실을 극대화시킨 대통령이 박정희였다. 옛날로 치면 ‘환관통치’는 박정희 독재의 유산인 거다. 장관 대신 청와대정부(그리고 비선 또는 여사)와 함께 통치한 박근혜 윤석열 그리고 문재인 역시 제왕적 대통령이 된 양 오만했지만 끝이 좋진 않았다.
스스로 영리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이 대통령은 청와대 가도 제발 그 길은 피해주길 바란다. 용산에선 대통령실이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는 형국이었는데 청와대에선 대통령부터 달라지면 된다. 수석보좌관회의보다 국무회의를 중시하고, 인사권은 김현지나 인사수석 아닌 장관들에게 돌려주고, 청와대에 갇히지 말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 강훈식은 대통령에게 악법 거부권 행사 건의하라
성남라인과 변호인 출신 (별 경력 없는) 참모들은 차라리 집사처럼 대통령 사법리스크, 또는 심기경호만 신경썼으면 한다. 그래야 내각이 능력을 발휘할 것 같아서다.
강훈식은 혹시 자기 선거에만 신경 쓴, 대통령 행세로 재미 본, 아첨꾼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기록되고 싶은가. 아니라면, 24일 민주당이 강행처리한 위헌적 ‘수퍼 입틀막법’ 허위조작근절법에 대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시라. 양심이 있다면 직을 걸어야 할 사안이다. 개딸을 뺀 전 국민이 당신을 다시 볼 것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