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편법 유출-가격 담합 기업 등… 시장 교란 1조원 탈세 혐의 조사 ‘검은머리 외국인’ 탈루도 겨냥 환율 종가 이틀연속 1480원 넘어… 금융위기 직후 2009년 이후 처음
안덕수 국세청 조사국장이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격 담합 등 불공정 행위로 물가 불안을 부추긴 ‘시장 교란행위 탈세자’에 대한 세무조사 추진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연일 상승하는 고환율에 국세청도 환율 잡기에 칼을 빼들었다. A기업처럼 편법적으로 외화를 유출해 환율 변동성을 키운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정부가 수출기업과 국민연금 등을 압박하고 외환 규제까지 완화하며 환율 잡기에 나서도 환율이 오르자 국세청까지 나선 것이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83.6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이틀 연속 종가가 1480원을 넘긴 것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11개 기업이 해외로 부당 반출한 외화 규모만 5000억∼6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환율로 물가도 덩달아 오르는 가운데 가격은 유지하는 대신에 용량을 줄인 ‘슈링크플레이션’ 프랜차이즈 등도 조사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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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우선 편법적으로 국부를 유출한 ‘외환 부당 유출 기업’ 11곳을 대상으로 탈루 혐의를 정밀하게 분석할 계획이다. 법인자금을 편법으로 유출해 고가의 해외 자산 등을 취득하거나 대외계정을 악용해 국외로 외환을 부당하게 빼돌려 환율 상승에 일조한 기업들이 타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당 기업들의 탈루 혐의 금액은 총 7000억∼8000억 원 수준이고, 이들이 해외로 부당 반출한 외화 규모는 5000억∼6000억 원 규모”라고 설명했다.
국내 전자제품 제조업체 B사는 해외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천 기술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 법인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기술 사용료를 낮춰 1500억 원 상당의 외화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았다.
국세청은 “외국 국적을 보유하고 국내에서 다수의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도 조사 대상”이라고 밝혔다. 편법으로 외화 반출과 탈루 혐의가 있는 사업자들이 대상이다. 실제로 한 사업자는 한국에서 외국인 지위를 이용해 개설한 대외계정으로 수출 대금 등을 받고 개인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 이를 감추기 위해 법인을 만들어 수십억 원의 자금을 빌려주고, 부산 해운대에 있는 고가의 펜트하우스를 법인 명의로 인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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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을 핑계로 가격을 올린다면서 실제론 담합 등을 통해 필요 이상으로 물가를 올린 독과점 기업들도 세무조사에 포함됐다. 조사 대상이 된 7개 업체는 사다리 타기, 제비뽑기 등을 통해 낙찰 순번을 정해 나눠 먹기식 수주를 하면서 들러리 업체에는 입찰 포기의 반대급부로 계약 금액의 10%에 상당하는 금액을 담합 사례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치킨, 빵 등을 판매하면서 가격은 그대로 두고 중량만 줄이는 ‘용량 꼼수’로 이익을 거둔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조사한다. 한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은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음식 중량을 줄여 거둔 이익을 사주 일가가 운영 중인 계열법인의 광고선전비 지원에 사용했다.
할당관세를 적용받아 원재료를 저렴하게 수입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이를 판매가격에 반영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한 기업도 조사 대상이 됐다. 한 업체는 사주의 자녀가 운영하는 특수관계법인을 유통 과정 중간에 끼워 넣고, 관세 감면을 받은 원재료를 저가에 공급하는 등 부당하게 이익을 나눈 사실이 적발됐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를 통해 물가와 환율 상방 압력을 유발하는 등 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면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시장 교란행위 탈세자를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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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