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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비확산의 세계적 리더” 日 핵무기 보유론 일축한 美

입력 | 2025-12-21 16:42:00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AP뉴시스


미국 국무부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 취임 뒤 일본 정부 내에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공개 발언이 나온 것을 두고 “일본은 핵 비확산의 세계적인 리더”라고 선을 그었다. 최근 일본 총리실 간부가 핵무기 보유를 주장한 뒤 중국, 북한 등의 반발이 커지자 사실상 미국이 직접 ‘핵 비확산’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일본 방위상은 이 사안에 대해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19일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의 주일 미군기지를 방문해 미 해군의 ‘시울프(Seawolf)’급 핵추진 잠수함도 시찰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지난달 7일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파장으로 중국과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핵무기 보유 추진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중 반발에 美 “日, 핵 비확산 리더”

21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일본의 핵무기 보유와 관련된 일본 언론의 질의에 “일본은 핵 비확산, 핵 군비관리 추진 등에서 세계적인 리더이며 중요한 파트너”라고 답했다. 이어 “미일 동맹은 인도태평양 평화와 안정의 초석”이라며 “미국은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는 현대적 핵 억지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앞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일본 총리실의 한 안보정책 담당 간부는 18일 사견을 전제로 취재진 앞에서 “우리(일본)가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중-러의 핵 위협 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핵 억지력만 믿을 수 없다는 취지다. 지난달 다카이치 총리의 ‘비핵 3원칙’(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 재검토 시사와 맞물려 일본이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등 ‘핵 옵션’을 가지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현재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하에서 핵무기 보유는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에만 허용된다. 일본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한국, 대만 등 주변국도 핵 개발에 나서는 ‘핵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중국, 북한 등은 거세게 반발했다. 궈자쿤(郭嘉昆)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일본 우익 보수세력이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 ‘재군사화’를 가속화하려는 야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21일 외무성 일본연구소장 담화를 통해 일본의 핵무장론은 “극히 도발적인 망언이며 인류에 대재앙”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본을 “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를수 있는 불량국가”라고 했다. 이를 두고, 오래전부터 국제사회 규범을 어겨가며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이 이같은 담화를 내놓는건 부적절하단 평가가 나온다.

日 방위상 “모든 선택지 배제 안 해”

출처=고이즈미 방위상 X

하지만 고이즈미 방위상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비핵 3원칙’ 재검토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평화로운 생활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모든 선택사항을 배제하지 않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핵반입 등을 금지한 ‘비핵 3원칙’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총리가 발표한 후 지금까지 일본 핵 정책의 근간이 돼 왔다. 이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음을 주무 장관이 밝힌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요코스카 주일 미군기지 시찰 당시 해상자위대의 잠수함 ‘세이류’도 함께 둘러봤다.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일본유신회는 올 10월 연정 구성 당시 합의문에서 ‘차세대 동력을 활용한 수직발사장치(VLS) 탑재 잠수함을 보유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염두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지난달 6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것도 언급했다. 그는 “주변 나라는 모두 핵 잠수함을 가진다”고 핵잠 도입의 필요성을 거듭 시사했다.

다만 고이즈미 방위상은 핵무기 보유를 주장한 총리실 간부의 발언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피했다. 그는 19일 미국 핵잠 시찰을 앞두고는 취재진에게 “현 시점에서 특정 동력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검토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도쿄=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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