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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 꿈꾸다 범죄, 그 청춘에 자유를

입력 | 2025-12-16 03:00:00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작곡가 와일드혼
대공황 탈출 노린 실존인물 그려
11년만에 새 프로덕션으로 내한… 1930년대 ‘텍사스風 음악’ 매력
“캐릭터 입장서 분노 느끼며 작곡… 韓관객 늘 놀라워, 연인관계 같아”



2004년 ‘지킬 앤 하이드’를 시작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과 20여 년간 동행해 온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 모래 먼지 폭풍 ‘더스트 볼(Dust Bowl)’이 휩쓴 황폐한 땅에서, 두 젊은 남녀는 끝내 벗어날 출구를 찾지 못한다.

11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는 더 나은 삶을 꿈꾸다 범죄의 길로 빠진 실존 인물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국내 영화 개봉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범죄 자체보다 빈곤과 공황의 시대에 내몰린 청춘의 절박한 선택에 시선을 둔다. 10일 극장에서 만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67)은 이 작품을 “젊은이들이 여기서 벗어나려 애썼던 고군분투를 그린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왜 그런 선택에 이르렀는지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universal) 이야기가 아닐까요.”

‘지킬 앤 하이드’와 ‘마타하리’, ‘웃는 남자’, ‘시라노’ 등으로 국내 뮤지컬 팬들에게 친숙한 와일드혼은 팝 음악에서 출발해 뮤지컬 무대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작곡가. 휘트니 휴스턴(1963∼2012)의 히트곡 ‘웨어 두 브로큰 하츠 고(Where Do Broken Hearts Go)’를 만든 그는 이후 뮤지컬에서도 귀에 감기는 멜로디와 분명한 클라이맥스를 지닌 음악으로 사랑받아 왔다.

이번에 선보인 ‘보니 앤 클라이드’는 국내에서 2014년 이후 11년 만에 선보이는 새로운 프로덕션이다. 의상과 분장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구성과 음악적 밀도 역시 이전 시즌보다 강화됐다. 2022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선보인 새 버전으로 호주와 브라질, 덴마크, 핀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공연됐다. 와일드혼은 “보니와 클라이드는 정말 다양한 문화권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며 “내 예술이 살아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각 나라에 최대한의 자유도를 주고자 한다”고 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에 실존한 범죄자 커플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쇼노트 제공

이 작품은 와일드혼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특히 미국적인 색채가 짙다. 1930년대 텍사스를 배경으로 컨트리, 로큰롤, 재즈가 어우러진 음악 어법이 특징. 오케스트라는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텍사스 지역 색채를 드러내는 밴조와 만돌린을 강조한 9인조 편성으로 구성됐다. 그는 이번 한국 프로덕션에 대해 “뮤지션들이 정말로 내 스타일을 잘 포착해냈다. 아주 아메리카적인 사운드”라며 “텍사스 억양을 그대로 구현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이 진실하게(real)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와일드혼다운 중독성 강한 넘버들 역시 매력이다. 보니의 도발적인 끼를 담은 ‘하우 바웃 어 댄스(How ’Bout a Dance)’에 대해 “1920년대 히트곡이 무엇일지 상상하며 만든 곡”이라고 했다. 클라이드가 범죄자로 각성하는 ‘레이즈 어 리틀 헬(Raise a Little Hell)’은 “가수가 넘어야 할 큰 산 같은 노래”라며 “곡을 쓸 때 철저히 캐릭터 입장에서 분노를 느껴보고자 했다”고 했다.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한국 초연부터 와일드혼은 벌써 21년간 한국 뮤지컬과 인연을 이어왔다. 올해도 ‘데스노트’, ‘지킬 앤 하이드’, ‘웃는 남자’ 등 그의 작품 6편이 국내 무대에 올랐다. 그는 이를 두고 “나 자신을 놓고 경쟁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웃었다.

최근엔 클래식 작곡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교향곡 1번과 2번을 완성했고, 세 번째 교향곡 ‘비엔나’를 작업 중이다. ‘지킬 앤 하이드’, ‘드라큘라’ 등 자신의 뮤지컬 음악을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재구성한 음반도 최근 처음 녹음했다.

“한국 관객들은 언제나 너무 놀랍고, 감사합니다. 관객들과 마치 연인 관계(love affair)처럼 느껴져요. 머리로는 설명할 수 없고, 마음으로 느껴지는 거라고 할까요. 역시 음악엔 국경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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