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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유의 ‘전세 제도’에서 세입자의 지위를 엄밀히 따지자면, 많게는 집값의 절반 이상을 전세 보증금 명목으로 집주인에게 빌려준 ‘사적 대출’의 채권자다. 그런데도 1960년대 시작된 산업화 시대 이후 살 만한 집이 늘 부족했던 대도시에서 세입자는 집주인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역대 정부의 정책 역시 전세 기간 연장, 전세사기 방지 등 세입자의 권익 보호에만 집중됐다. 최근 “우리 권리도 보장해 달라”며 집주인들이 ‘세입자 면접권’을 요구하고 나선 건 그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일반 집주인을 포함해 임대사업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한주택임대인협회는 최근 부동산테크기업, 신용평가기관 등과 손잡고 ‘세입자 스크리닝 서비스’를 내년 중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대차 계약을 맺기 전에 세입 희망자의 최근 3년간 임차료 및 공과금 체납 이력, 과거 계약 갱신 정보, 동거인 정보, 반려동물 유무, 흡연 여부 등을 집주인이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로 부각된 2021년 이후 정부는 세입자들이 집주인의 보유 주택 수, 보증사고 이력, 세금 체납 여부를 체크할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반대로 집주인은 세입자 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게 집주인들의 불만이다. 세입자가 금융채무불이행자나 위험인물이어도 알 방법이 없다. 이런 ‘정보 비대칭’을 해소할 방법으로 떠오른 게 사전 스크리닝 서비스, 세입자 면접권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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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전세의 월세화도 집주인들이 세입자 정보를 중시하게 된 이유다. 전세보다 보증금이 현저히 적은 월세의 경우 세입자가 안정적 직업은 있는지, 밀리지 않고 월세를 낼 수입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 집주인이 세입자의 직업·소득·신용도·범죄 기록 등을 체크하는 건 보증금 규모가 몇 달 치에 불과하고, 한 번 들인 세입자를 한국보다 내보내기 어려워서다. 서울·경기도의 전세 매물을 실종시킨 ‘10·15 대책’이 예상치 못한 나비 효과를 만들고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