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NOW] ‘자기 보호’와 ‘내면의 힘’ 상징… 단정하고 흔들림 없는 인상 줘 하이넥 실루엣 FW 컬렉션 주목… 시각적-심리적으로 ‘갑옷’ 기능
올겨울 패션 하우스들은 다양한 하이넥 실루엣을 선보이고 있다. 생 로랑은 직선으로 곧게 뻗은 어깨선과 턱끝까지 차오르는 하이넥 의상을 컬렉션 전면에 내세웠고(왼쪽 사진) 루이뷔통(가운데 사진)과 빅토리아 베컴(오른쪽 사진)도 다양한 소재의 하이넥 의류를 올해 가을·겨울 컬렉션에 선보였다. 각 브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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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을 관통하는 실루엣 트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하이넥이다. 컬렉션 사진을 넘기다 보면 어떤 아이템이 주목받는지보다 옷깃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올 정도다. 패션 하우스들은 니트부터 코트, 재킷까지 목선을 높이, 더 높이 밀어 올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단지 한겨울 바람을 막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목을 안정적으로 감싸는 하이넥 실루엣은 그 자체로 시선을 붙잡으며 단정하고 흔들림 없는 인상을 만들어준다. 로고와 장식을 걷어내고 실루엣과 소재만으로 승부하는 요즘의 트렌드 기류와 맞물려 하이넥은 자연스럽게 트렌드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옷깃을 높이 세운 형태의 하이넥은 사실 패션사에 오래전부터 반복해 등장해온 코드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즐겨 두르던 레이스 러플 칼라는 군주의 권위를 과시하는 상징적인 도구였고,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목 끝까지 촘촘히 잠근 하이넥 드레스가 여성의 품위와 단정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하이넥이 지적인 이미지를 위한 일종의 유니폼이 된다. 특히 1990년대 실용주의 열풍 속에서 조르조 아르마니, 질 샌더, 캘빈 클라인 같은 미니멀리즘 대가들이 선보인 터틀넥 스웨터는 지금도 하우스를 대표하는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다. 최근 몇 년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얼굴의 절반은 가리는 마스크 생활에 익숙해지자, 몸을 단단히 에워싸는 실루엣에 대한 심리적 저항마저 한층 낮아졌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시대와 스타일이 달라져도 하이넥은 꾸준히 ‘자기 보호’와 ‘내면의 힘’을 상징해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2025 가을·겨울(FW) 컬렉션에서는 어떤 변곡점을 마주했을까. 가장 인상적인 첫 장면은 생 로랑 컬렉션에서 포착됐다. 이너와 아우터를 가리지 않고 직선으로 곧게 뻗은 어깨선과 턱 끝까지 차오르는 하이넥 실루엣의 피스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과한 장식이나 디테일 없이 실루엣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어 빅토리아 베컴은 부드러운 가죽 소재의 하이넥 코트와 쇼츠 셋업으로 트렌드를 공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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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머플러 형태로 보온성과 형태감을 동시에 살린 디자인도 눈에 띄었다. 스키아파렐리는 거대한 칼라를 꼬아 두른 듯한 브라운 체크 코트로 목과 턱을 감싸는 네크라인을 완성했고, 알렉산더 왕은 가죽 재킷 위에 패딩 소재의 볼륨감 있는 하이넥 스카프를 둘러 도심의 보호 장구 같은 룩을 완성했다. 그런가 하면 아예 하이넥을 조형적인 오브제로 끌어올린 사례도 있다. 뒤란 란팅크는 패딩 코트의 스탠드 칼라를 머리 가까이 치솟도록 부풀려 보디라인을 마치 하나의 구조물처럼 만들었고, 준야 와타나베는 삼각형으로 부풀린 패딩 베스트를 목 깊숙이 끌어올려 마치 쿠션을 둘러매고 걷는 듯한 극단적인 실루엣을 제안했다. 여기에 알렉산더 매퀸까지 가세해 어깨를 둥글게 부풀린 거대한 퍼 아우터를 쇼 말미에 올려 넣으며 가드를 바짝 올린 듯한 패션 신으로 트렌드의 정점을 찍었다.
이처럼 하이넥은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일종의 아머(Armor·갑옷) 같은 기능을 한다. 간결하면서도 견고한 칼라 라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작은 방어막이자 안정감을 제공한다. 한겨울 거리에서 목을 훤히 드러낸 사람과 코트 깃을 끝까지 세운 사람 중 누가 더 단단해 보이는지 떠올려보면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 칼라를 올릴 것인가, 내릴 것인가. 올겨울은 더욱 코트 깃을 끝까지 끌어올려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안미은 패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