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안보 족쇄’ 풀린 핵추진 잠수함의 모든 것 軍, 1990년대 초부터 비닉사업 추진… 美 핵연료 제공 거부로 제자리 걸음 지난달 李-트럼프 정상회담서 부활… 2030년대 중반 이후 4척 배치 목표 핵잠, 기동-은밀성 등 재래식 압도… 북핵 억제 등 자주국방의 핵심전력 4척 건조 시 15조 이상 소요 추정
미국 오하이오급 핵잠수함
한미가 14일 관세·안보 팩트시트를 발표하면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정부는 10년 내 국내 건조 계획을 밝혔지만 건조 장소와 방식을 둘러싼 후속 협상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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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래식 압도하는 핵잠, 자주국방의 핵심 전력”
반면 재래식 잠수함은 수시로 물 밖으로 나와 디젤 터빈을 돌려 축전지를 충전하고, 연료도 주기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적국의 위성이나 함정, 항공기에 들킬 가능성이 크다. 최신형 재래식 잠수함도 2주 이상 수중작전을 지속하기 힘들다.
핵잠의 수중 속도는 시속 46km 이상으로 재래식 잠수함보다 3배가량 빠르다. 적국 해역의 표적을 타격한 뒤 신속히 빠져나온 후 최단 시간에 재공격에 나설 수 있다. 재래식 잠수함보다 덩치도 커서 더 많은 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군 당국자는 “핵잠을 실전 배치하면 북한의 핵·미사일 기지와 북한 지휘부에 대한 상시적인 감시·타격태세를 갖출 수 있다”고 했다. 다량의 탄도미사일을 적재한 핵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최고지도부에 핵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는 순간 제거될 것이라는 공포를 안겨 줄 수 있다는 것.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대남 핵투발 무기의 고도화 등 ‘레드라인(금지선)’에 근접한 북핵 위협에 맞서 핵잠이 ‘게임 체인저’로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관계자는 “취임 이후 자주국방 의지를 누차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잠 확보를 전격 천명한 것은 핵잠이야말로 자주국방에 필요한 핵심 무기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일 잠수함연구소장(예비역 해군 대령)은 “한국의 핵잠 도입 논의는 더 이상 희망이나 구상 단계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프로젝트로 전환될 가능성이 열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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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2차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때였다. 군 당국자는 “전작권 전환 등 자주국방을 추진했던 노무현 정부는 중장기적 북핵 대응 차원에서 핵잠 건조를 추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언론에 관련 내용이 알려지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10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우라늄 농축 비밀 실험에 대한 사찰을 통보하면서 그 여파로 무산됐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한국의 핵 개발 잠재력 확보를 우려해 반대했기 때문이다. 군 소식통은 “IAEA의 사찰 과정에서 비밀리에 추진 중인 핵잠 사업이 드러날 경우 핵 개발 의혹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업을 접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핵잠 사업은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부활의 전기를 맞았다. 2017년 4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선 후보 초청토론회에서 “우리나라도 핵잠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당선되면 미국과 원자력협정 개정 논의를 하겠다”고 언급한 것.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석 달 뒤인 2017년 8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핵잠 보유 의지를 밝히는 등 임기 내내 대미 설득에 외교적 노력을 들였다. 군 당국자는 “2021년 5월 한미 정상 간 미사일 지침의 완전 해제 합의로 ‘미사일 주권’을 회복한 문재인 정부는 핵잠을 최후의 ‘안보 족쇄’로 여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완강한 반대 의사를 고수했다. 2020년 9월 당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미국을 방문해 핵잠용 핵연료 공급을 타진했지만 미 정부가 난색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5년 만에 이 대통령의 핵연료 공급 요청에 트럼프 대통령이 핵잠 건조를 승인한다고 화답하면서 핵잠 확보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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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래식 무기 장착 핵잠은 ‘비핵 전략무기’
러시아 타이푼급
하지만 우리가 확보할 핵잠은 재래식 무기를 장착한 ‘비핵 전략무기’로 핵확산 행위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핵잠에 핵을 탑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실은 전략핵잠(SSBN)은 적국의 선제 핵공격에도 살아남아 ‘제2격(핵보복)’을 가할 수 있어 ‘최종 핵병기’로 불린다. 미국의 오하이오급, 러시아의 타이푼급, 중국의 진급처럼 최소 1만 t 이상의 ‘덩치(배수량)’에 히로시마 원폭(20kt·1kt은 TNT 1000t의 파괴력)보다 수백, 수천 배 위력이 센 핵무기를 싣고 있다.
프랑스 바라쿠다급
정부와 군은 5000t 이상 핵잠을 4척가량 국내 건조 방식으로 2030년대 이후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미국의) 버지니아급(7800t)보다 훨씬 저렴하고 우리 수요에 맞는 잠수함을 한국에서 지으려 한다”며 “(핵잠용) 핵연료(우라늄) 농축도는 대체로 20% 이하에서 할 수 있다는 쪽”이라고 했다. 제원만 놓고 보면 한국형 핵잠은 프랑스의 바라쿠다급(5300t)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적기 개발·배치하려면 국가 역량 결집해야”
중국 진급
비용도 만만찮다. 5000t급 이상 핵잠의 건조 비용은 2조∼3조 원대로 추정된다. 4척을 확보하려면 8조∼12조 원이 소요되고, 개발비까지 포함하면 15조 원을 훌쩍 넘을 수도 있다. 올해 국방예산(약 61조 원)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군 관계자는 “핵잠의 적기 확보를 위해선 안정적 재원 확보 방안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한미 간 건조 장소와 방식도 서둘러 확정지어야 한다. 정부는 핵잠 선체와 원자로까지 10년 내 한국에서 건조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팩트시트에는 건조 장소와 시기, 연료 공급 방안 등 세부 내용이 빠져 후속 협의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개연성이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미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경우 건조와 핵연료 제작 시설 등을 새로 지어야 해 국내 건조보다 훨씬 큰 비용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다. 잠수함 전문가인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한미가 기간과 비용, 위험 요소를 종합적으로 냉철하게 비교해서 건조 장소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한미 병행·공동 건조 방식’이 해법으로 제시된다. 한국형 핵잠은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미국 핵잠은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 펀드를 활용해 한국 기업이 소유한 필리조선소에 핵잠 건조 시설을 구축해 건조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연 1척에 불과한 핵잠의 건조 속도를 높이고, 한국은 핵잠을 적기에 확보하면서 건조비도 아끼는 ‘윈윈’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마스가 펀드 투자로 필리조선소에서 버지니아급 핵잠을 수주할 경우 국내 업체들도 건조에 참여함으로써 한국형 핵잠의 완성도를 높이고, 방산 경쟁력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