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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의 메디컬리포트]인구 절벽 시대, 신생아 건강권 첫발은 신생아 선별검사

입력 | 2025-11-27 23:06:00


순천향대 서울병원 의료진이 3일차 신생아 발뒤꿈치에서 혈액을 채취하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효과적인 치료제도 있는데 여전히 늦게 발견돼 생명이 위험하도록 방치되고 있다는 게 늘 안타깝다.”

28일 열리는 대한신생아스크리닝학회 학술대회를 앞두고 만난 이정호 순천향대 서울병원 교수(대한신생아스크리닝학회 총무이사)는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조기 발견 및 예방 치료가 가능한데도 여전히 방치되고 있는 선천적 질환에 대한 현실을 토로했다. 신생아 선별검사는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신생아를 대상으로 희귀하지만 치료 가능한 심각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함으로써 아기의 평생 건강과 정상적인 발달을 돕는 검사다.

선천적 질환은 태어났을 때는 증상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조기 치료를 놓치면 심각한 지적 장애, 성장 장애,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신생아 선별검사엔 혈액검사를 통해 실시하는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 검사(페닐케톤뇨증, 선천성 갑상선기능저하증 등), 청각 선별검사, 심장 선별검사 등이 있다. 특히 혈액검사는 총 40∼50종이 국가 지원 검진 항목에 있다. 2024년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인 ‘리소좀 축적질환’이 국가 지원 검진에 포함된 뒤 지금까지 추가된 검사는 없다. 리소좀 축적질환 검사는 6, 7명이 조기 발견돼 조기 치료를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선천적인 질환들에 대해 치료제들이 속속 나오면서 신생아 선별검사에 아직 포함되지 못한 검사에 대한 요구들이 의료계와 환자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질환이 척수성 근위축증(SMA)이다. 유전성 근육질환으로 신체의 모든 근육이 약해지면서 자가 호흡조차 어려워질 수 있는 질환이다. 척수성 근위축증으로 이미 손실된 운동신경세포는 되돌릴 수 없다. 이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기 전 진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교수는 “현재 국내에 치료제가 나와 있어 질환을 빠르게 발견하기만 한다면 아이들의 생명을 살릴 뿐 아니라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며 “신생아 선별검사의 취지에 따라 척수성 근위축증이 정부 지원 항목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영유아 부모 8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생아 선별검사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92.9%가 치료제가 존재하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정부 지원 신생아 선별검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답했다. 척수성 근위축증의 선별검사 도입에 찬성한 비율은 92.2%에 달했다. 척수성 근위축증 선별검사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고하는 신생아 선별검사 대상 질환이다. 일본 대만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는 활발하게 도입 중이다.

척수성 근위축증뿐 아니다. 태어날 때 멀쩡했던 아이가 생후 3개월쯤부터 온갖 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열이 빈번한 상황일 때 강하게 의심해 볼 수 있는 질환인 중증복합면역결핍증(스키드)이라는 질환이다. 제때 진단받지 못해 치료 적기를 놓치면 아이가 첫돌이나 두 돌을 넘기지 못하고 100% 사망한다. 치명적인 유전성희귀질환인 만큼 미국은 모든 주에서, 유럽은 약 15개 국가에서 신생아 선별검사로 조기에 발견하고 있다.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스키드는 조기 발견이 된 경우, 기회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입원 치료를 하다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을 수 있다. 완치되는 경우도 있다.

실명을 유발할 수 있는 신생아 안질환도 안저검사로 조기 발견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소아안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신생아 선별검사에 넣어 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신생아 안질환 중 일부는 빠르게 발견하면 수술이나 약물 치료로 시력 저하를 막을 수 있다. 선천성 망막질환은 최근에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임상이 한참 진행 중이어서 완치에 대한 기대가 크다. 기존 신생아 선별검사에 들어가 있는 MPS(뮤코다당질축적증) 검사는 현재 1형만 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2형이 많아 MPS 2형 검사를 추가하는 것도 대한신생아스크리닝학회에서 요구하고 있다. 조기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신생아 선별검사는 말을 못 하는 신생아들의 최소한의 건강권이다. 희귀질환이라 정부가 중요시하는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긴 어렵다. 하지만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다양한 복지제도를 마련하는 정부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의 첫걸음을 잘 떼길 바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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