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무명 시기를 딛고 프로배구 여자부 정관장에서 주전 세터로 도약한 최서현이 대전 구단 훈련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서현은 “이번 시즌 신인상을 받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대전=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숱한 좌절과 위기 속에서도 최서현(20·정관장)을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한 문장이다. 돌아온 시간만큼 더 성숙해진 그는 이제 새로운 팀에서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7월 정관장에 합류한 최서현은 어느덧 팀의 어엿한 주전 세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시즌 10경기에 나서 1000개가 넘는 세트(1015회)를 시도했다. 2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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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데뷔 시즌에는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두 번째 시즌에도 3경기(4세트) 출전에 그쳤다. “또래 선수들이 데뷔전을 치르는 걸 볼 때마다 부럽다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조바심도 나고 주눅도 들었죠.”
결국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팀을 떠나야 했다. “정리될 것 같다고 직감은 했어요. 불러주는 팀이 없으면 실업팀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프로에서 계속 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옵션 포함 보수 총액 5000만 원에 정관장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데 이 예상치 못한 이적이 최서현의 배구 인생을 바꿔놓게 됐다.
정관장 주전 세터 염혜선(34)에 이어 김채나(29)도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기회는 자연스럽게 최서현에게로 향했다. 중책을 맡게 된 최서현은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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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입단 3년 차까지 받을 수 있는 신인상(영플레이어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올해가 마지막 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김)세빈이가 알려줘서 알았어요. 그때부터 조금 욕심이 나더라고요.” 최서현과 김세빈(20·한국도로공사)은 한봄고 동기다.
고희진 정관장 감독도 25일 현대건설전을 앞두고 “우리는 경기를 뛰면서 성장이 목표인 팀이다. 그 중심에 최서현이 있다”고 말하며 그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강조했다.
정관장 세터 최서현. 대전=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최서현의 배구 인생 출발점에는 어머니인 기남이 한국배구연맹(KOVO) 판독위원(53)이 있었다. “요즘은 사후 판독 업무를 하시는데 제 경기를 볼 수밖에 없다 보니 자주 피드백을 주세요. 칭찬보다는 쓴소리가 많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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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봄에는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 최서현은 신인 드래프트 직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경기 한 번 보지 못하고 가셨는데, 위에서 보고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부모님께 자랑거리인 딸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전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정관장 세터 최서현. 대전=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눈물이 고인 자리에는 금세 꿈과 의지가 차오른다. “이번 시즌에는 일단 신인상을 받고 싶어요. 연차가 쌓이면 주전으로 오래 뛰면서 ‘베스트7’에도 들어보고 싶고… 국가대표도 해보고 싶어요!” 그녀의 두 눈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대전=한종호 기자 hj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