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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팝니다 [뉴욕의 순간]

입력 | 2025-11-23 09:00:00


사진과 함께 뉴욕 속 이야기로 떠나는 짧은 여행.
기사에 담지 못한 뉴욕의 순간을 전해드립니다.
이 순간의 음악 : New York City - The Manhattans


미국 최대 도시, 세계 자본주의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
뉴욕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는 다른 도시에선 찾아보기 힘든 압도적 스카이라인입니다. 

뉴욕 이스트강 너머에서 바라본 맨해튼의 스카이 라인.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그런데 얼마 전 하늘을 보다 문득 ‘뉴욕은 어떻게 이런 라인이 나오지? 용적률 제한이 없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맨해튼은 어떻게 이런 스카이 라인이 나올까요.

뉴욕 이스트강 너머에서 바라본 맨해튼의 스카이 라인.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찾아보니 여러 제도가 있었는데 비결 중 하나는 바로 ‘공중권’이란 개념이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뉴욕 같은 아주 큰 도시에만 있는 특별한 제도인데 한마디로 공중, 그러니까 하늘을 사고 파는거죠. 예를 들어 내가 건물을 아주 높게 새로 짓고 싶은데 용적률이 꽉 찼다고 하면 다른 건물이 가진 용적률을 사올 수 있는 개념입니다.

다른 이의 하늘에 대한 권리를 돈을 주고 가져올 수 있는 것이죠. 하루 수천억 달러의 돈이 오가는 월가의 도시,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이들이 모여있는 도시에서는 하늘조차 사고파는 대상인 셈이에요.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바라본 맨해튼 남쪽. 저 멀리 제일 높은 건물이 9.11 테러가 있었던 세계무역센터 건물 자리에 다시 지은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다. 1776피트(541미터)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며, 미국의 회복과 재건을 상징하기 위해 미국이 독립한 해인 1776년의 의미를 담아 높이 숫자를 맞춰 지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들어보니 아무 공중권이나 가져올 수 있는 건 아니고, 보통 공중권을 확보하려면 먼저 자기 건물이 속해있는 길의 인접 건물 공중권부터 알아본다고 하더라고요. 몇몇 특정 지구는 좀 더 넓은 범위 내에서 공중권을 살수 있게 허가해주기도 하고요. 

굳이 건물을 높이 올리고 싶지 않거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건물을 다시 짓지 않는 건물주가 있다면 사오는 사람은 건물을 높이 지을 수 있어서 좋고, 파는 사람은 굳이 획일적인 개발을 하지 않고도 남은 용적률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나름 합리적인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욕의 상징 중 하나로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맨해튼의 기차역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메인홀 크기만도 농구장 8개 규모에 달한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또 뉴욕시가 영원히 보전해야할 명소의 경우에도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하지 않더라도 재산권을 누릴 수 있도록 랜드마크 공중권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맨해튼의 유명 명소인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이나 세인트 패트릭스 대성당 같은 곳이 공중권을 매각한 대표적 사례인데요.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건물을 개발 논리로 부수지 않아도 됐다니 천만 다행입니다. 

가운데 가장 밝게 빛나는 건물이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새로 생긴 JP모건 체이스 신사옥이다. 건물 외관이 전부 LED조명으로 돼 있어 건물 전체의 빛을 원하는 색과 모양으로 바꿀 수 있다. 평소에는 은은한 하얀 빛이지만 독립기념일이나 재향군인의 날 등 국가적 의미가 있는 날에는 건물 상단부 전체를 성조기 모양으로 바꾼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공중권 일부는 올해 완공돼 최근에 입주한 JP모건 체이스 신사옥이 사갔다고 하네요. 원래 JP모건 옛 사옥은  215m 정도 높이였는데 공중권 확보를 통한 재건축으로 7년만에 427m 높이 초고층 빌딩으로 새로 지어졌습니다. 월가 황제인 JP모건의 명성 답게 뉴욕에서 가장 높은 오피스 빌딩 중 하나가 됐어요.

해가 지기 직전 가장 짙어지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얘길듣고 가만히 맨해튼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만든 건 높기만 한 건물들이 아니라 작은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들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높낮음 없이 모두 똑같은 키의 높은 건물로 가득했다면 맨해튼은 아마 거대한 철벽을 세운 어둠의 섬처럼 보였을 겁니다. 

다시 생각해도 뉴욕의 매력은 낮고 귀여운 건물들과 찌를 듯 높은 백몇층짜리 건물들이 한블럭 안에 함께한다는 점이에요. 18세기 건물부터 21세기 건물까지 길고 짧은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도 뉴욕만의 매력이고요.

종종 눈뜨면 변하는 서울에서 변하지 않는 풍경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도시를 지키는데는 그에 맞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간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imsun@donga.com으로 보내주세요 :)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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