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하이데거 극장’ 중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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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하이데거는 통념을 거스르는 역발상의 귀재다. 위에 인용한 구절도 그렇다. 나는 과학과 기술의 선후를 따질 때 과학이 더 근본적이며 앞선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인류는 거대한 자연재난 앞에서, 병마와 죽음의 운명 속에서 끊임없이 몸과 외부 세계를 통제하려고 애써 왔다. 그런 생존과 관련된 지적 노력이, 가령 의학과 같은 정교한 테크네(techne·기술)의 세계를 만들어 왔고, 과학은 그 부산물이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은 지금도 유효하다. 기술을 과학의 하위로 보고 하찮은 것에 지배당한다고 기분 나빠 한다든지, 기술 같은 것은 인간이 잘 다루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기술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 또 기술이 삶의 구체적이고 절실한 필요에서 나왔다는 점을 등한시하게 한다. 오히려 하이데거는 말한다. 인간은 끝 간 데까지 가서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채택해 왔다고. 그 끝에 대해서, 그리고 그다음에 올 반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