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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이미 지고 비 가려줄 연잎조차 없지만,
시든 국화는 찬서리에도 줄기 아직 꿋꿋하다.
일 년 중 가장 좋은 풍경, 그대 꼭 기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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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荷盡已無擎雨蓋, 菊殘猶有傲霜枝. 一年好景君須記, 最是橙黃橘綠時.)
―‘유경문에게(증유경문·贈劉景文)’ 소식(蘇軾·1037∼1101)
‘스러짐’의 계절에도 생명의 빛을 본 시인은 문득 한 친구를 떠올렸다. 장군의 후예로 태어났으나 벼슬길은 순탄치 않았던 유경문이다. 여러 고을을 전전하던 그는 어느덧 인생의 가을에 서 있었다. 시인은 편지 쓰듯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마음을 건넸다. 연잎은 시들어 더는 비를 막지 못하지만, 국화 줄기는 찬서리를 견디며 여전히 우뚝하다. 귤나무의 황금빛 열매와 푸른 잎은 차가운 날씨에도 눈부시게 빛난다. 그 빛은 친구의 절개를 닮았고, 동시에 시인의 낙관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시인은 ‘이미 지고 없는 것’과 ‘아직 꿋꿋하게 남은 것’의 대비 속에서 삶의 품격과 정신의 지속을 노래한다. 그 느긋한 달관 속에는 세월을 견디는 인간의 품위가 배어 있다.
이 시를 보낸 두 해 뒤,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훗날 소식은 ‘이 한 편의 시에 그를 향한 내 마음이 모두 담겼다’고 적었다. 짧은 시 한 편, 그것은 한 시대의 우정이었고 한 인간의 철학이었다. 만물이 시들어가는 중에도 마음의 가지 하나쯤은 끝내 서리를 견딘다. 귤빛 같은 생명력이 반짝이며 삶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다독인다. 그것은 천 년을 넘어 전해지는 시인의 푸근한 격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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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