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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 존재를 金으로 되살리다

입력 | 2025-10-29 03:00:00

‘그곳에 있었다_청계천 2025’ 이수경 작가
“모든 것엔 불성 있다”… 스님 말 듣고 돌에 금박
도자기 파편 이어붙인… ‘번역된 도자기’로 유명
“원인 모를 죽음의 공포… 그게 내 작업의 원동력”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 2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청계공존’에 지명공모로 당선된 이수경 작가(오른쪽 사진)의 새 작품 ‘그곳에 있었다_청계천 2025’(왼쪽 사진). 이수경 스튜디오 제공

‘청계천 다슬기’라는 별명이 붙은 클래스 올덴버그(1929∼2022)의 ‘Spring’이 있는 청계광장 초입. 최근 그 앞쪽에 웬 ‘황금 덩어리’ 하나가 들어섰다. 늘 붐비는 이곳, 반짝이는 커다란 덩어리를 다들 힐끔거린다. 가끔 몇몇 용자는 슬쩍 만져도 본다. 자세히 보면 도자기 파편이 콕콕 박혀 있는 이 조각 작품. 이수경 작가의 신작 ‘그곳에 있었다_청계천 2025’다.

2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작가가 금덩이의 ‘정체’를 밝혔다.

‘그곳에 있었다_청계천 2025’ 작품에 박혀 있는 도자기 조각. 깨진 도자기 조각을 금박으로 이어 붙이는 기법은 이수경 작가의 대표작 ‘번역된 도자기’에도 사용된다. 이수경 스튜디오 제공

“청계천 수원지였던 북악산 정상의 두꺼비 바위예요. 청계천을 복원할 때 도자기가 많이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고 도자기 파편을 붙였죠.”

이 작가는 서서히 변하기에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듯한 바위를 “가장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여긴다. 언제나 변함없어 존재감이 덜하지만, 금박을 입히니 숨어 있던 이야기가 강렬히 드러나는 듯하다. 이 작가는 “금박을 붙이면 표면의 질감도 살아난다”며 “귀한 바위를 가장 좋은 장소에 모셔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돌덩이에 금박을 입히는 ‘그곳에 있었다’ 연작 시리즈. 출발은 2015년 백련사였다. 스님에게 “모든 것엔 불성(佛性)이 있다”는 말을 들은 뒤, 작가는 절 마당 돌멩이 두 개에 금박을 입혔다.

“돌 하나를 스님에게 드리자 갑자기 스님께서 회색 방석 위에 돌을 놓고 염불하며 절을 하며 한 바퀴 돈 다음 법당에 모셔 놓았어요. 그냥 돌이 소중한 것으로 변하는 연금술 같은 마법을 경험한 순간이었죠.”

버려진 것을 다시 보게 만드는 건 이 작가의 다른 연작 ‘번역된 도자기’에도 적용된다. 다만 ‘그곳에 있었다_청계천 2025’는 청계천 복원 20주년을 기념해 전시 감독인 장석준 큐레이터와 상의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메시지를 담았다면, ‘번역된 도자기’는 더 내밀하다.

‘번역된 도자기’는 깨진 도자기 파편을 이어 붙이고 틈새를 금으로 메워 만든다. 2001년 유명한 도공이 망친 도자기를 깨는 장면을 보면서 시작됐다.

“순간 온몸이 얼음처럼 굳었고, 도공에게 파편을 가져가도 되냐 하니 ‘쓰레기니까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테이블 위에 펼쳐 놓은 조각을 퍼즐처럼 맞춰보며 작품이 됐습니다.”

작가는 당시에는 그 장면이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심리 치료를 받으며 단서를 찾았다.

“제가 목에 탯줄이 감긴 채 태어났대요. 의사가 죽었다고 했는데 어떻게든 살려달라는 호소에, 커다란 대바늘로 발바닥과 목 안까지 찔렀다고 해요. 죽다 살아난 셈이죠. 도자기가 깨지는 장면에서 원인 모를 불안은 무의식적인 ‘죽음의 공포’인 것 같아요. 그게 제 작업의 원동력이에요.”

깨졌다 살아난 작가의 자화상처럼 느껴지는 ‘번역된 도자기’는 괴물처럼 웅장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지난해에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룹전 ‘괴기한 아름다움: 시누아즈리의 재해석’에 대규모 설치 연작으로 전 세계 관객을 만났다. 다음 달 1일부터는 대만 타이베이비엔날레에 출품된다. 역시 폭이 4m에 가까운 대형 설치 작품이다.

이런 대형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작가는 매일 드로잉을 하고 시를 쓰고 있다고 한다. ‘나만의 언어’를 찾고 싶어서 4월부터 시작한 드로잉은 250점이 넘게 쌓였다.

“인공지능(AI)으로 언어가 단순화되는 시대에 나만의 개성을 찾고 싶다는 몸부림이 ‘시 쓰기’인 것 같아요. 사실은 기회가 되면 ‘시 드로잉’을 꼭 전시하고 싶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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