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심리] 투자가로 성공하려면 일단 산수 잘하고 숫자에 익숙해져야
한 초등학생이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머릿속에 아무런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GETTYIMAGES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나요?”
이 아이는 초등학생이다. 커서 부자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물론 이 질문을 내게 처음 던진 건 아니다. 자기 부모에게 먼저 물었다. 이런 질문에 보통 부모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공부 열심히 해라”다. 그 대답이 아이 가슴에 별로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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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가 보기에 자기 주변에서 가장 부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였고, 그래서 내게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묻는 거였다면 나도 별 부담 없이 “공부 열심히 해”라고 했겠지만 아이 얼굴이 퍽 진지했다. 이렇게 진지하게 질문해오면 나도 제대로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떠오르는 대답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정말이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질문들은 대답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다. 그 답을 정말 입 밖으로 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고민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대답이 떠오르기는 한다. 그런데 이 질문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나도 잘 모른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도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프로야구 선수 지망생인 초등학생이 프로야구 선수에게 “어떻게 하면 야구선수가 될 수 있나요”라고 묻는데, “나도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면 얼마나 어이없겠나. 이건 초등학생의 꿈을 꺾는 대답이다. 어떻게든 대답해야 한다. 바로 떠오르는 건 없었지만 머릿속에서 정리한 뒤 얘기를 시작했다.
부자가 되는 방법에는 4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업가가 되는 것, 둘째는 투자가가 되는 것이다. 셋째는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이 되는 것이고, 마지막이 스포츠나 예능 스타로 성공하는 것이다. 부자 중 비중이 가장 큰 건 사업가이고 그다음이 투자가다. 미국 부자는 사업가가 50%, 투자가가 30%, 전문직이 12% 정도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나머지 8%는 스포츠 스타나 방송 등 연예인이다.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데는 재능이 중요하니 특별히 지금 뭘 해야 한다고 말해줄 것이 없다. 아이에게 답할 수 있는 건 사업가, 투자가, 그리고 전문직이었다.
먼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전문직을 보자.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이다. 그냥 전문직이 되는 것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전문가라고 해도 돈을 많이 벌기 어려운 분야가 대부분이다. 그 분야에서 성공적인 전문가가 되면 부자로 살 수 있는 전문직이어야 한다. 익히 알려진 의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전문직이 되려면 우선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그것이 굉장히 어렵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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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없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전문직도 있다. 소위 경영자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이사 등이 해당한다. 이 경우 기업 규모가 중요하다. 대기업 고위직에 올라야 부자가 될 수 있다. 기업 규모가 작으면 고위직까지 올라도 큰 부자가 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 방법으로 부자가 되려면 일단 대기업에 입사해야 한다. 그런데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도 굉장히 어렵다. 결국 공부를 잘해야 한다. 부모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건 이렇듯 나중에 부자가 될 수 있는 전문직에 몸담으라는 의미다. 부자가 되려면 일단 지금, 초등학생 때 공부를 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부모가 한 대답과 내 대답이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부자가 될 확률이 가장 높은 방법, 부자 중 비중이 가장 큰 건 사업가다. 사업으로 성공하면 부자가 된다. 그럼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기 위해 초등학생은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건 대답이 될 수 없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업가 부자 중 학생 때 공부를 잘한 사람은 거의 없다. 공부 자질과 사업 자질은 다르다.
사업은 근육 단련과 같다고 본다. 처음에는 잘 못하더라도 몇 번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계속 사업을 시도할 수 있는 끈기와 자금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 지금 사업을 시도해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나중에 사업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주변을 계속 살펴보는 정도다. 다만 영어 등 외국어와 산수는 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외국어를 잘하면 사업 범위가 달라진다. 또 수학을 잘할 필요는 없지만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등 사칙연산은 빠르게 잘할 필요가 있다.
전문직과 사업가까지는 그래도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투자가였다. 나중에 성공적인 투자가가 되기 위해서는 뭘 준비해야 할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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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같은 경우 처음에는 못해도 몇 번 하다 보면 잘할 수 있게 된다. 사업은 단련되는 분야다. 하지만 투자는 좀 다르다. 투자를 오래 했다고 잘하게 되는 건 아니다. 여러 번 실패를 경험했다고 더 잘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고, 이전에 성공했다고 계속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다음 시험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는다. 줄곧 90점 이상을 받던 학생이 다음 시험에서 갑자기 30점을 받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사업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던 사람이 갑자기 망하는 일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업은 서서히 망하지 어느 날 갑자기 망하지 않는다. 밖에서 보기에는 갑자기 망한 것 같아도 내부에서 보면 차차 망해간다. 하지만 투자는 다르다. 계속 90점 넘는 점수를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0점을 받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계다. 성공적인 투자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투자는 경험만으로 단련되는 분야가 아닐뿐더러, 과거 성공이 미래를 보장하는 분야도 아니다.
부자 되기, 안개 낀 미로 같은 길
성공적인 투자가가 되는 데 필요한 자질은 대체 뭘까. 이것을 잘하면 투자도 잘할 수 있다고 말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머릿속에 한 가지 떠오른 게 있긴 했다. 도박이다. 포커, 홀덤, 화투, 카지노 게임 등을 잘하면 투자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투자가는 도박사와 기질이 비슷하다. 도박을 잘하는 사람은 성공적인 투자가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초등학생에게 포커를 배우라고 할 수는 없다. 초등학생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포커 등에 익숙해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자기가 끌리면 스스로 접근하는 분야지,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추천할 만한 분야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사업가처럼 산수를 잘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산수를 잘하고 숫자에 익숙해지는 건 투자가에게 필수 조건이 맞다.
초등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려다 보니 부자 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이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됐다. 그래도 비교적 명확해 보이는 길은 공부를 잘해서 전문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권하는 건 그 나름 일리가 있다. 그게 유일한 길은 아니지만 확실히 보이는 길이긴 했다. 부자가 되는 다른 길들은 참 모호하다. 부자들도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운, 안개 낀 미로 같은 길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11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