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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의 성추행,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

입력 | 2025-10-25 01:40:00

◇히아킨토스/박애진 지음/244쪽·1만4000원·고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히아킨토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이 사랑했던 미소년의 이름이다. 2025년 SF(공상과학)어워드 장편부문 대상 수상작인 박애진 작가의 ‘히아킨토스’는 행성 하나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인간형 로봇, 즉 휴머노이드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 속 ‘유르베’ 행성은 지구 출신 이민자들이 만든 이상사회다. 시민들은 정착금과 참여소득을 받아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는다. 왕이나 여왕이 다스리고 귀족이 존재하는 왕정에 신분제를 채택하지만, 신분은 평등한 시민들끼리 제비뽑기로 결정한다. 귀족이라 해도 일종의 인기 연예인 같은 영향력을 가질 뿐이다. 왕이나 여왕, 귀족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도 이런 점을 완전히 이해한다. 힘든 노동은 로봇이 하고, 제비뽑기로 뽑힌 ‘귀족’들은 로봇 동물을 사냥하는 놀이를 즐기며 자연을 보호한다.

정보라 소설가

이런 완벽하고 안정된 사회에서 성추행 사건이 벌어지며 소설이 시작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자는 놀랍게도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모든 사람의 사랑과 동경의 대상이던 인간형 로봇 ‘제로델’이다. 그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하고 당당하게 시민권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수많은 귀족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으나 누구에게나 완벽한 연인으로 추앙받았다.

그가 성추행의 범인으로 지목되자 사법대신은 로봇인 제로델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그와 사랑을 나누었던 여성들은 제로델이 시민권을 가진 인간이므로 섣불리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종교지도자인 카이유와 추기경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로델과 관계를 맺었던 여러 인물을 방문하여 제로델의 행적과 상황의 이면을 추적한다.

작가는 이상사회와 로봇에서 시작해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질문한다. 제로델이 남성의 모습을 하고 여성을 사랑하는 성적 지향성을 가졌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 카이유와 추기경이 만나는 인물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모든 사람이 발달된 의학기술을 통해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할 수 있게 된 사회에서 여성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고민한다.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주위의 압박에 떠밀려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해버리기도 하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남편의 술버릇, 폭력, 끊임없는 외도에 시달리기도 한다. 혹은 아름답지 않고 성형수술에 의존하지도 않으며 독립적인 삶을 사는 여성이 그 때문에 성형수술을 하고 결혼을 하라는 사회적 압박에 고통받기도 한다. 여성 주인공들은 제로델과 관계를 가지며 여성이고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상처를 치유받는 경험을 한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주장한다. “성추행은 범죄이고, 범죄에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제로델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인간으로 인정받아 폐기되지 않아야 한다. 제로델이 인간과 같은 범죄 의도를 가질 수 없으니 폐기할 이유가 없다.”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무엇보다 다른 인간을 존중하고 치유할 수 있는 인공존재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작가는 SF라는 장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주제를 통해 인간만이 겪는 사회적인 문제, 관습과 편견과 성역할과 폭력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진지하고도 뚝심 있게 풀어나가 결국은 조용하고도 깊이 있는 결말에 도달한다.

신화에서 미소년 히아킨토스는 서풍의 신 제피르가 질투하여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작품 속 제로델도 결국 불완전한 인간들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존재였기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정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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