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 ‘0시를 향하여’ 중
사건이란 대개 갑작스럽게 터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예고 없이 일어나는 불행, 우연처럼 찾아오는 기쁨. 그러나 이 문장을 곱씹다 보면 사건은 결코 한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여러 갈래의 길이 서로를 향해 모여든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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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예 작가·‘달러구트 꿈 백화점’ 저자
삶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저마다 전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해 하나의 순간으로 모여드는 경험을 한다. 매일의 선택, 우연한 만남, 사소한 말 한마디가 모여들어 어느 날 극적인 장면을 이룬다. 허구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사랑하면서도, 이러한 매일의 발견을 할 때면 각자의 인생이 결국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지루한 하루 끝에는 ‘나는 지금 어떤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생각한다. 그러면 이내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계판 위에 무수한 가능성이 겹쳐 보인다. 우리라는 바늘이 시계축에 고정돼 있다고 상상해 보자. 보이지 않는 축이 있기에 안심하고 원점에서 가능한 한 멀리까지 궤적을 그릴 수 있다. 바늘이 0시에서 만났을 때, 단순한 직선처럼 여겨질지라도 마침내 포개어진 서로의 모습을 알아보고 기뻐할 수 있기를.
이미예 작가·‘달러구트 꿈 백화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