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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은퇴지만 프랑스에선 현역…오선택 佛양궁 감독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헌재의 인생홈런]

입력 | 2025-10-19 13:17:00


프랑스 양궁 대표팀 감독으로 제2의 지도자 인생을 살고 있는 오선택 감독. 오 감독 제공


한국 양궁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따면 ‘죄인’이 되는 유일한 종목이다. 30년 넘게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는 덕분에 한국 양궁은 자의든 타의든 금메달이 당연시된다. 무리한 기대 속에서도 양국 양궁은 매 대회 최고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양궁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사상 첫 전 종목(금메달 4개)을 석권했다. 혼성전이 포함돼 금메달 5개가 된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5개 전 종목을 휩쓸었다.

하지만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를 의미하는 한국 양궁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오선택 현 프랑스 대표팀 감독(64)이 대표적이다.

당시 임동현, 김법민, 오진혁으로 구성된 남자 대표팀은 역대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만약 한국이 한 개의 메달을 딴다면 남자 대표팀이 될 거라고들 했다. 예선에서도 세계신기록을 3개나 따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남자 단체전에서 미국에 일격을 당하며 동메달에 ‘그쳤다.’ 일주일 후 열리는 남자 개인전까지 오 감독은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 감독은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이 모두 찾아왔다. 탈모도 생겨 머리를 박박 밀고 모자를 쓴 채 대회를 치렀다”고 했다.

그를 구했던 건 남자 대표팀의 맏형 오진혁이었다. 이전 대회까지 유독 개인전 금메달이 없던 한국 양궁은 오진혁의 사상 첫 개인전 금메달로 체면치레를 했다. 오 감독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아닐까 싶다. 대회 후 인터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오선택 프랑스 양궁 대표팀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이헌재 기자


이에 비해 여자 대표팀 코치로 함께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천국이었다. 김수녕, 윤미진, 김남순으로 이뤄진 여자 대표팀은 거칠 게 없었다. 당연한 듯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뿐 아니라 개인전에서는 세 명의 선수가 금, 은, 동메달을 모두 차지하며 나란히 시상대 위에 섰다. 김수녕이 금, 윤미진이 은, 김남순이 동메달이었고, 4위는 북한의 최옥실이었다.

소속팀 LH 양궁단에서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19년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도전을 했다. 2020 도쿄올림픽 총감독직에 지원해 합격한 것이다. 그는 “얼마나 힘들고 부담이 될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자팀, 남자팀 지도자로 올림픽 금메달을 이뤘으니 총감독에 마지막 양궁 인생을 걸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소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물거품이 됐다.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유행 속에 2020년 도쿄올림픽이 1년 미뤄진 것이다. 여느 종목이라면 대표 선수와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모두 유임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과 원칙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대한양궁협회는 지도자와 선수를 모두 새로 뽑기로 했다. 그렇게 그의 양궁 지도자 인생도 끝나는 것 같았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 당시 각국 대표팀 지도자로 모인 한국 지도자들. 왼쪽에서 세 번째 오선택 감독. 동아일보 DB


의외의 기회는 프랑스에서 찾아왔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프랑스가 좋은 성적을 내줄 경험 많은 지도자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오 감독은 정년 후에도 자신의 지도력을 펼칠 무대가 필요했다. 양측의 입장이 맞아떨어지면서 오 감독은 2022년 초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 양궁은 작년 파리 올림픽에서 두 가지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남자 대표팀은 단체전 은메달을 따며 사상 처음 올림픽 시상대에 올랐고, 리자 바르블랭은 여자 선수 최초로 개인전 메달(동메달)을 수확했다. 한국 양궁이 전 종목(금메달 5개)을 석권한 가운데 프랑스는 종합순위 2위에 오르며 개최국의 체면을 지켰다.



시간이 바쁘게 지나가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 오선택 감독은 워라밸의 삶을 산다. 오선택 감독 제공


오 감독은 근력이 모자란 남자 선수들의 활을 한국 여자 선수들이 쓰는 활로 바꿨다. 바람 방향에 따라 조준을 달리하는 오조준도 가르쳤다. 동시에 한국 양궁의 DNA를 불어넣었다. 오 감독은 올림픽을 앞두고 퐁텐블로에서 양궁장이 설치된 파리 앵발리드까지 74km 거리의 행군을 기획했다. 오전 7시에 출발해 꼬박 24시간이 걸리는 강행군이었다. 오 감독은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기 위해선 기억에 남는 훈련이 필요하다. 선수들이 앵발리드로 골인하면서 개선하는 느낌을 주도록 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온 양궁 마스터 ‘미스터 오’는 파리 올림픽 후 르 몽드 등 유력지의 스포츠면 기사를 여러 차례 장식했다. 집 인근 레스토랑에 가면 알아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좋아진 건 일과 삶의 균형이다. 여유 넘치는 프랑스 사람들과 함께하며 할 땐 하고, 쉴 때는 확실히 쉬는 삶을 산다. 흔히 말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완벽한 인생이다. 좋은 날씨 속에 야채, 단백질 위주의 건강한 식단을 하면서 몸도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에서 먹던 성인병 약은 프랑스에서는 모두 끊었다.


프랑스 국가대표 훈련장에서의 오선택 감독의 모습. 오선택 감독 제공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도 꾸준히 한다. 밴드 스트레칭으로 유연성을 유지하고, 가벼운 무게의 기구를 사용해 근력을 키운다. 주말에는 집 인근 골프장에서 카트를 끌고 18홀을 돈다. 오 감독은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만 해도 18홀을 돈 뒤 너무 피곤해서 쓰러졌다. 지금은 가끔 36홀도 소화할 만큼 몸이 좋아졌다”며 웃었다. 프랑스에서 생활 체육에 가까운 승마도 가끔 한다.

한국에서 성공적인 지도자 인생을 보낸 그가 프랑스에서도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제2의 인생을 사는 건 양궁에 관한 열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양궁을 시작한 그는 10점 과녁에 화살이 꽂힐 때의 쾌감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미친 듯이 운동을 했다. 일반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인 오전 6시에 먼저 나가 운동을 시작했고, 밤이 깜깜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고교 때 전국대회 우승도 여러 번 했지만 선수로서의 한계도 일찍 깨달았다. 올림픽에 나갈 선수가 될 수 없으니 대학생 때 일찌감치 지도자로 변신했다. 처음엔 중고교 팀을 맡다가 1993년부터 한국토지공사(현 LH) 감독이 됐다.


오선택 감독이 지난해 붉을 밝힌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오선택 감독 제공


그의 밑에서 성장한 대표적인 선수는 2016년 리우 올림픽 2관왕 ‘짱콩’ 장혜진이다. 실력에 비해 멘털이 약했던 장혜진은 번번이 대표 선발전 마지막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관중들이 많은 국제대회에 많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오 감독은 “국가대표야 알아서 국제대회 경험을 쌓을 수 있지만 장혜진 같은 선수는 그렇지 못했다. 개인 적금을 깨서 국제대회에 내보낸 적도 있다. 어느 순간 장혜진이가 알을 깨고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고 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벌써 은퇴했을 나이. 하지만 프랑스에서 오 감독은 여전히 현역이다. 최근에는 프랑스양궁협회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재계약을 했다. 오 감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양궁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라며 “유럽 양궁이 좀 더 성장해야 세계 양궁이 더 재미있어진다. 당장은 프랑스 대표팀에 집중하고자 한다. 장기적으로는 유럽 곳곳에 양궁 캠프를 세울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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