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폐허로 변한 지역 랜드마크 경남 대표 관광지 ‘통도환타지아’… “황폐화된 건물” 청소년 탈선 우려 보은 ‘펀파크’는 방치 끝 운영 중단… 포항 ‘꽁치象’은 미관 저해 탓 철거 수백억 혈세 투입하고도 관리 뒷전… 시군구 60%, 주민의견 절차 무시 “스토리-지속성 담은 설계 필요”
“저기는 으스스해서 낮에도 귀신 나올 것 같아요. 근처엔 산책도 안 가요.”
13일 경남 양산시에서 만난 주민 이모 씨(64)는 장기간 휴장 중인 복합 리조트 ‘통도환타지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양산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한 이 씨는 “예전에 자녀들 손을 잡고 즐겁게 놀러 갔던 기억이 있는데, 저렇게 흉물처럼 방치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며 “미관 문제도 있지만 주민 안전을 위해서라도 부지가 하루빨리 개발돼야 한다”고 했다.
한때는 지역의 랜드마크로 불렸던 놀이공원과 공공조형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흉물로 방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업적을 위해 급조하지 말고, 주민과 논의해 스토리 있는 랜드마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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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5년 넘게 휴장 중인 경남 양산시 통도환타지아 놀이공원 내 회전목마가 멈춰 서 있다. 시설 전체가 흉물처럼 방치되면서 우범지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독자 제공
5년 넘게 방치된 부지는 나뭇가지와 잡풀 등이 무성했다. 놀이기구는 녹슬거나 부서져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보도블록엔 이끼가 잔뜩 낀 모습이었다. 안내 부스와 콘도 유리창도 여기저기 깨져 날카로운 파편이 사방에 튀어 있었다.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위험한 모습이었다.
출입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콘도로 이어지는 입구엔 ‘외부인 출입 금지’라고 쓴 바리케이드와 ‘폐쇄회로(CC)TV 촬영 중’이란 경고문이 붙었지만, 다른 보안 장치는 없어 외부인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였다. 놀이동산 내 영화관과 게임장, 콘도 등 건물 입구에도 “외부인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붙었지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실제로 8월 한 유튜버는 ‘폐건물을 탐험해 보겠다’며 통도환타지아 내부에 직접 들어가 영상을 찍어 올렸다. 영상엔 황폐화한 객실과 식당, 물놀이장 등이 등장했고 “괜찮은 시설인데 안타깝다” “가출 청소년의 아지트가 될 수도 있겠다” “귀신만 안 나올 뿐 공포게임 실사판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양산 출신 서종철 씨(61)는 “청소년 탈선이나 범죄 현장이 될까 봐 걱정”이라며 “비가 많이 오면 놀이동산 저수지에서 악취가 올라오는 등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인근 상인은 “하루빨리 재개발돼야 상권이 살아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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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증한 공공시설, 곳곳에서 흉물로 방치
이런 사례는 통도환타지아뿐만이 아니다. 충북 보은군 ‘보은 펀파크’도 5년째 운영하지 못하고 시설물이 방치되고 있다. 펀파크는 2012년 4월 군이 보은읍 길상리에 조성한 테마파크 형태의 어린이 놀이·체험시설로, 펭귄 모양 전망대와 정크아트 박물관, 전시관, 체험관, 바이크 경기장, 모형자동차 경기장 등이 설치돼 있다. 이후 보은군은 한 업체에 시설 운영을 위탁했지만 해당 업체는 코로나19 유행기를 견디지 못하고 2020년 운영을 중단했다.
울산 울주군 신불산 모노레일의 운영이 중지된 모습.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가 2018년 20억 원을 들여 설치했지만, 개통 첫날 전원이 끊겨 운행을 멈춘 뒤 5년간 방치됐다가 결국 철거됐다. 동아일보DB
울산 울주군 ‘신불산 국립자연휴양림 모노레일’은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가 2018년 휴양림 이용객과 짐을 수송하기 위해 20억 원을 들여 설치했다. 그런데 개통 첫날 전원이 끊기며 운행을 멈췄다. 이후 모노레일을 다시 가동하려 안전 점검을 벌였지만 레일과 차량 등에서 여러 결함이 발견돼 운행 자체가 아예 중단됐다. 이 모노레일은 5년간 운영되지 못한 채 방치되다 2023년 12월 4억 원을 추가로 들여 다시 철거 작업을 진행했다.
10년간 흉물 논란을 겪다가 지난해 6월 철거된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의 영화 ‘괴물’ 조형물.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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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적보다 납득할 스토리 필요”
전문가들은 지역의 흉물로 남는 랜드마크가 많아진 것에 대해 지자체장 등 지역 정치인이 자신의 업적을 위해 주먹구구식으로 시설을 만드는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박민정 원광대 행정언론학부 교수는 “공공이 나서 랜드마크를 만들면 지자체장 치적을 위해 졸속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후 지자체장이 바뀌면 해당 시설은 금세 쓸모가 없어져 흉물로 전락한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방치된 조형물을 보수하거나 유지 관리하는 데도 상당한 돈이 들어가 지역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상징성이나 스토리가 부족한 조형물은 오히려 예산 낭비와 지역민의 자긍심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며 “지역 주민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조형물의 주제를 미리 정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투자해야 제대로 된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