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립도서관이 아일랜드 출신 대문호인 오스카 와일드가 숨진 지 125년 만에 재발급한 도서관 출입증. 만료일인 1900년 11월 30일은 그가 숨진 날이다. 출처 영국 국립도서관
BBC 등에 따르면, 영국 국립도서관은 16일 오후 와일드의 손자인 멀린 홀랜드 씨에게 해당 열람증을 전달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번 재발급은 동성애를 범죄로 여기는 판결과 도서관의 출입 금지 조치가 부당했다고 영국 국립도서관 측이 뒤늦게 인정한 상징적 조치다.
와일드는 1895년 5월 당시 범죄였던 동성애 관계 혐의로 ‘중대한 외설 행위’ 죄목으로 기소돼 2년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영국 국립도서관 전신인 대영박물관 도서관 이사회는 투옥 이후 그의 출입을 금지했다. 당시 규정상 범죄 유죄 판결자는 도서관 출입 자격이 박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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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영국 국립도서관 홈페이지 캡처.
와일드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자각하기 전인 1884년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국내에선 유미주의 성향 작품 보다 동화 ‘행복한 왕자’를 쓴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 동화가 아들들을 위해 쓴 작품이다. 아내 콘스턴스는 와일드가 수감되자 별거를 선언하고, 자신과 두 아들 성을 와일드 대신 홀랜드로 바꿨다. 이번에 할아버지를 대신해 출입증을 받게 된 손자 멀린은 와일드 둘째 아들 비비언 후손이다. 멀린은 저명한 와일드 문학 연구자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동성애 금지 법안은 1967년 폐지 수순을 밟았다. 와일드는 201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왕실 특권을 통해 사후 특별 사면됐다.
영국에서 동성애로 처벌받은 사람을 사면하는 이른바 ‘앨런 튜링법’이 제정된 것은 2017년이다. 이는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은 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해군 암호체계 에니그마의 해독기를 만들어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게 이끌고도 동성애로 기소돼 화학적 거세형을 받았고, 이후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 주사 부작용을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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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