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내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 ‘비상선언’(2022년)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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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천 가톨릭관동대 초빙교수·전 국정원 국장
2006년 2월 영국 보안국(MI5)은 파키스탄계 영국인 압둘라 아흐메드 알리라는 인물이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정보원 라시드 라우프와 연계 중인 정보를 포착했다. 알리에 대한 감시에 착수한 가운데 한번은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귀국하는 그의 수하물을 몰래 수색했다. 그의 수하물에선 AA 건전지와 설탕이 든 분말주스 등이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것들이 폭탄 제조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후 알리와 주변 인물에 대한 추적이 본격화되면서 수상한 움직임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이들의 독특한 대화 방식이었다. 공원에 엎드려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는데 이는 원거리 마이크에 의한 도청을 막기 위함이었다. 해당 행위는 이들이 테러리스트임을 말해 줬다. 또한 알리와 핵심 인물들이 분담해 약국에서 구연산과 과산화수소, 주사기 등을 대량 구입하고 슈퍼마켓에서 플라스틱 음료수병을 유심히 살피는 모습이 포착됐다. MI5는 공항에서 확인한 알리의 특이한 물품들과 이들의 행동이 폭탄 제조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했지만, 어떤 형태의 폭탄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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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알리가 영국발 미국행 항공편을 검색하는 등 테러 임박 징후들이 나타나면서 20명이 넘는 가담자 전원을 체포했다. 알리로부터 압수한 메모리 카드에는 런던에서 미국 시카고, 시애틀, 캐나다 토론토 등으로 가는 총 7편의 항공기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들은 의심을 피하고자 가족을 대동하려 했으며 자살 테러를 앞두고 순교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판에서는 공항에서 서방의 정책에 반대하는 작은 소동을 일으키려 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결국 테러 계획의 전모는 밝혀지지 못한 채 핵심 인물들만 종신형에 처했다. 또한 테러를 배후 조종한 라우프는 파키스탄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에 체포됐다가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2008년 미국의 드론 공격을 받고 사살됐다. 얼마 전 국내에서 파키스탄 테러 조직 라슈카르에타이바(LeT) 조직원이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유엔이 지정한 테러단체 소속의 훈련받은 정식 요원이었다. 이는 많은 우려를 낳았다. 대테러 활동의 목표는 예방에 있다. 그래서 외국과의 정보 협력을 포함한 정보 수집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9·11테러도 정보 실패의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보기관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9월이다.
정일천 가톨릭관동대 초빙교수·전 국정원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