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욱 인하대병원 신경과 교수가 시신경척수염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인하대병원 제공
30대 여성 직장인 김주미 씨(가명)는 최근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한쪽 눈에 하얀 안개가 낀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시야가 무너져 내렸다는 생각에 출근길 마음마저 무거웠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며칠 사이 시력은 급격히 악화하면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김 씨는 인하대병원을 찾았고, 희귀 자가면역질환인 ‘시신경척수염(NMOSD)’이라는 예상치 못한 검진 결과를 받았다.
시신경척수염은 면역체계가 자기 몸의 중추신경계를 공격해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주로 시신경염이나 척수염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시력 저하나 근위 약(근육의 힘이 약해진 상태), 감각저하, 오줌누기장애 등 병변 위치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유발한다.
갑작스럽고 빠르게 악화하는 것이 특징이며 김 씨처럼 수일 이내에 한쪽 혹은 양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을 정도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이 질환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자기공명영상(MRI), 뇌척수액 검사, 신경생리 검사, 혈액검사 등이 필요하다. 특히 혈액검사에서 ‘항-AQP4(Aquaporin-4) 항체’가 검출되면 시신경척수염으로 진단된다. 이 항체는 뇌와 척수에 존재하는 아쿠아포린 단백질을 공격해 염증을 일으키는데 시신경뿐 아니라 자칫 척수, 뇌를 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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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다행히 빠른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통해 시력을 대부분 회복했다. 현재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며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다. 병을 앓기 전과 비교해 시력 저하나 마비 등의 후유증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권 교수에 따르면 시신경척수염은 치료가 쉽지 않은 희귀질환이다. 그러나 조기에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장기적인 관리를 지속하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급성기 치료가 끝난 뒤에도 이 질환은 ‘완치’가 아닌 ‘관리’의 개념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자가면역성 질환인 만큼, 면역억제제를 장기적으로 먹으면서 재발을 억제해야 한다.
척수염은 병변의 위치에 따라 매우 다양한 신경학적 후유증을 유발한다. 경수(목 척수)에 염증이 생기면 사지마비나 호흡근 마비까지 발생할 수 있다. 흉수(등 척수)나 요수(허리 척수)에 병변이 생길 경우 하반신 마비, 배뇨·배변 장애, 감각 저하 등이 동반될 수 있다. 특히 상위 경수 병변은 자율신경계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심박수나 혈압 조절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최근에는 기존 면역억제제 외에도 단일클론항체 계열의 신약들이 개발되고 있다. 특정 면역세포를 억제해 질환의 근본 원인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리툭시맙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최근 2년 사이 단일클론항체 계열의 신약들이 식약처 허가를 받았으면서 ‘급여 기준’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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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교수는 “최근에는 치료 옵션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희망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희귀질환이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증상이 의심되면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아 조기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